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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르네가 말이에요, 매그너스 님을 좋아한다고 몇 번이나 말하고 있잖아요?”

 

나는 듣지 않은 셈 쳤다.
아까부터 나를 따라다니는 까만 머리카락의 여자아이가 귀엽지 않다는 게 아니다, 증거로 나는 말이다,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데도 저걸 봐 주고 있는 채다. 말마따나 녀석의 까만 눈동자는 꽤 귀여웠다. 동그맣고 조롱거리는 것이 작은 다람쥐 같다.
그러니까 내가 듣지 않는 건 그거다, 그거. 말의 뒷부분이다. 뭐랄까 절대 상대해 주고 싶지 않은 소리인 것이다.
좋아한다느니 뭐라느니, 그래서 어쩌구 저쩌구, 정말 정말 정말 귀찮아서 뭐라, 대답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동행하는 것도 반대인 입장이다.
그런데 왜 같이 있느냐고, 자ㅡ그러게, 이게 대체 왜일까. 대체 왜 내가 매일매일 이 미소녀의 꿈을 꾸어야 하는 것이란 말인가.

“너 때문에 피곤해 죽겠다...”
“안 죽어요, 안 죽어! 매그너스 님도 말이죠ㅡ 르네랑 있으면 기쁘잖아요? 마구마구 껴안아주고 싶어지잖아요?”
“마구마구 패주고 싶어지는데.”
“우아앙.”

 

딱히 저 녀석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정말이다. 싫었으면 이미 저건 구석에서 떡이 되어 있었을 거라니까. 제법 귀엽고, 목소리도 쪼롱쪼롱해서, 말이 많은 카나리아 같은 느낌이지, 이건. 아, 날아다니는 점도 더해서 새 같다. 네, 뭐, 그런데요. 날아다닌다. 날아다닌다니까. 바닥에서 삼십 센티 정도 떠서 걷고 있잖아, 지금도.

 

“뇌 좀 쉬게 해 달라니까, 아침에도 제정신 밤에도 제정신이면 얼마나 힘든지 아냐?”
“우이우, 그치만, 그치마안.”
“그치만 그치만 하지 말고 이 자식.”

 

역시나 오늘도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다, 이건.
대체 왜 이 녀석의 꿈을 꾸게 된 걸까, 모르겠다, 감도 안 잡힌다. 애초에 이 녀석이 언제부터 나한테 좋아해요 좋아해요 하고 달라붙기 시작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매일매일 말이야, 아무 것도 없는 이런 공간에서 너랑 대화하며 걷기만 하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냐?”
“그렇지만 그렇지만, 매그너스 님이 르네한테 제대로 집중 안 해 주구.”

 

집중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다.

 

“매그너스 님이이, 르네의 말을 들어 주면 르네도 이렇게 있지 않아요? 르네도 말이야, 르네도 말이야 엄청 바쁜 몸이라구! 이리저리, 뒤죽박죽하게 어질러진 걸 치워야 하는 몸이라구요!”
“네 방에 있는 쓰레기 같은 거?”
“네! 가 아니라?!”

 

그래 그래, 할 일도 잔뜩 미루고.
겉보기에는 천사 같은 미소녀인데, 하는 짓은 전혀 아니올시다. 길게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카락도, 동그란 검은 눈동자도, 새하얀 피부와 새하얀 옷자락도, 눈이 부실 정도의 미소녀. 머리카락은 이상하게도 이 새까만 공간에서 반짝반짝 빛나서, 솔직히 말하면 처음 어느 정도는 저 얼굴만 보고 있어도 나름 괜찮았다.

 

“하지만 이제 아니지. 진짜 지루해, 잠 좀 푹 자게 해 줘라!”
“우우우!”
“우우우가 아니잖아! 내 꿈에서 나가 인마!”
“매그너스 님은 아무것두 모르구!”

 

네네, 아무것도 모르는 게 당연하지. 대체 누가 어느 날부터 꿈에 미소녀가 나타나서 휴식을 못 취하게 막는다는 병의 증세를 알겠냐. 알아도 정신착란이겠지.
르네는 뺨을 부풀린 채로, 어린아이처럼 나에게서 멀리 떨어져서는 내게 등을 보이고 앉았다. 놀랍게도 여기,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무릎을 안고 있는 것까지 선명하게 다 보인다.
이러면... 그래, 뭐, 정말. 위로해 주는 수밖에 없다. 대충 미안하다고 하면 금세 풀려서 헤헤거리는 녀석이니까. 그러고 나면 또, 다시 내보내 달라고 싸우고......
엄청 많이 그런 일을 해 온 기분이다, 실제로도 뭐, 그랬기도 했고.

 

“야, 일어나.”
“...히잉.”
“일어나, 알았다니까. 내가 잘못했어, 응? 됐지?”
“맨날 그렇게 말로만 사과하구, 진심두 없구.”
“진짜 미안하다니까.”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 르네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부들부들한 머리칼이 손에 쓸려 엉키는 느낌이 좋다, 이상하게 이건 엉켜도 금방 돌아온다.

 

“정말 미안하면 르네 부탁 들어 줘어.”
“그래, 그래.”
“정말로요? 정말로 들어 줄 거죠?”
“어엉.”

 

또 뭘 하려고. 정말로 정말로, 아무튼 성가신 걸 시키는 데에는 엄청나게 특기가 있는 녀석이라......

 

“하?”
“쨔쟌! 르네의 드림 월드!”

 

“허아?”

특기가 있는...
이 아니잖아 이게 뭐야 뭐냐고! 뭐야! 이런 거 할 줄 알았으면 진작 하라고! 보랏빛 하늘로 뒤덮인 파란 숲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걸 진작 하라고? 그럼 나가겠단 말 안 할 거 아냐?

 

“치우는 거 도와주세요!”
“니가 알아서 해!”
“우아앙! 거짓말쟁이!”

 

...같은 대화가 세 번 정도.
나는 지쳐서 마른세수를 하다가, 결국에는 이 기운 넘치고 짜증나는 미소녀에게 항복하고 만 것이었다.

 

“알았으니 뭘 치워야 하는지 말해......”
“와아~!”

 

르네는 있는 대로 구겨진 내 미간을 무시하고, 손을 휘적거리며 기운차게 따라오라는 듯한 신호를 했다.
내 기준으로 다섯 걸음 정도 앞에서, 주위의 색채 어두운 숲과는 어울리지 않는 새하얗고 새까만 소녀가 신나는 듯이 걷는다. 걷는다, 라, 역시 공중에서 공중을 박차며 다리를 움직이는 신호를 하는 것을 걷는다고 볼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마는. 

 

“이거에요, 이거! 이걸 해치워 주세요!”
“해치워... 라니 지금 저...... 젤리 병사들 같은 걸 말이냐?”
“당근빳다죠!”

 

당근빳다죠! 가 아니고 뭘 하면 치워 달라는 의뢰가 해치워 달라는 의뢰가 되는데? 해치워도 치워니까 결국에는 치워달라는 거냐? 뭐가 뭔지 정말, 나는 이마를 짚다가, 어느 샌가 손에 휘감긴 익숙한 손잡이를 발견하고 얼이 빠져 입을 벌렸다.

 

“......내 검은 또 언제?”
“자자, 말이 많아요!”

 

아니, 말이 많아요가 아니라. 그보다 내가 원래 갑옷을 입고 있었나?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늘 침입자를 해치우는 것처럼, 익숙하게 검을 휘두르며 곰곰이 생각해 보자니, 음...
역시 기억이 안 나는데. 잠옷이었는지 갑옷이었는지. 아무튼 검에는 갑옷이 더 어울리긴 하겠지, 내 쪽도 이 편이 더 익숙했다. 나는 전사, 거기다가 적도 많아서, 싸우는 일이 하루 일과의 절반이라고 해도 납득할 수준이니까 말이지.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다 보니 뭔가가 검 끝에 걸렸다. 젤리를 흩뿌리며 사라지는 병사의 바로 밑에, 사탕이 툭 하고 떨어진다.

 

“......이게 뭐야, 사탕 왕국도 아니고?”
“그거예요! 그걸 모아 주세요!”
“뭐 하러?!”
“아무튼 그걸 스무 개 모아서 저 상자에 넣어 주세요!”
“왜?!”

 

저거 상자 과자 아냐?! 경첩이나 테두리는 마시멜로우로 되어 있다. 역시 사탕 왕국이잖아, 이거. 헨젤과 그레텔이야? 과자 마녀냐고! 뭐 일단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저 녀석 말을 안 들으면 귀찮단 말이지.
사실 나는 역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편이기는 했는데, 그거야, 음... 역시 위치의 문제일까. 몬스터뿐인 왕국이래도 왕은 왕이니까. 왕이 이래라저래라 왈가왈부하는 말을 듣는 것도 이상한 이야기고, 그렇더라도... 역시 그 녀석 말이 맞다고 내심 후회한 적도 어느 정도, 있기는 했다.
여기에서 나오는 그 녀석은 벨데로스라고 직속 부하인데. 아무튼 몰라도 되는 놈이지만 맞는 말을 제법 한다. 저번에도 맞는 말을 하켁.

 

“뭐야 이거?!”
“앗, 이럴 수가! 젤리 새의 습격이다! 매그너스 님 사탕 스무 개 다 모았죠!”
“그, 뭐냐, 하나, 둘, 셋... 그런데 왜!?”
“다 모았는데 안 넣으니까 그렇잖아요! 빨리 저기다 다 넣어요, 다!”
“아, 알겠으니까 저거 좀 치워!”
“제가 만든 거 아니거든요!”

 

그럼 누가 만들었는데?!
아무튼 과자 상자에 사탕을 다 넣고 나니 젤리 새... 새? 새 모양 젤리의 습격은 멈췄다. 새 몸통만한 젤리가 힘없이 바닥에 툭툭 떨어진다. 어처구니가 없다.

 

“됐다, 가요! 다음 걸 치워야죠!”
“또 있냐고! 너 대체 얼마나 안 치우고 사는 건데!”
“이게 다 매그너스 님이 르네가 좋아한다는 말을 안 들어 주니까 그렇잖아요!”
“뭔 상관인데 그거! 뭔 상관인데!”
“상관있어요, 저거 봐요!”

 

르네는 흰 손가락으로 챡하고 눈앞을 가리켰다. 가리킨 곳에는 그러니까...

 

“으음? 여기 내 성이랑 똑같이 생겼는데.”
“그쵸? 가 아니라 저길 집중해서 보라구요!”
“아, 알았어 알았어, 지금 하는 거랑 똑같아서 안 봤어.”
“너무해! 정말 너무해!”
“너무해! 매그너스 님은 너무해!!!”
“아, 진짜 시끄러.”

 

참고로 뒤에 있는 대사 두 개는 우리가 한 게 아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저 쪽의 ‘우리’ 가 한 대사였다. 내가 걸어가면서 이마를 짚고 있고, 르네는 계속해서 내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좋아해, 너무해, 미워, 그치만 좋아해, 따위를 재잘거리는.

 

“보고 뭐 느끼는 거 없어요?”
“난 잘생겼고 넌 쬐끄맣다?”
“꼴받어.”

 

아닌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저 녀석은 정말 조그맣게 보인다. 다른 사람이 나와 이 녀석을 보면 저렇겠구만, 하는 새삼스러운 감상뿐이다. 내 날개 한 쪽이 녀석을 죄다 가릴 수 있을 정도로 작아 보였다.

 

“그래서, 뭐어, 저런 걸 보여줘서 뭐 어쩌려고?”
“그건 매그너스 님이 생각해야죠, 자, 가요!”

 

전혀 모르겠다. 아무튼 나와 르네가 지나간 자리를 나와 르네가 다시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내 성은 숲에 둘러싸여 있었지. 그 숲이 방금 지나온 것과 비슷하게 생겼었는데... ...싶은 걸 보니 이건 역시, 내 꿈인가. 이 녀석 내 꿈의 이곳저곳을 마음대로 마구잡이질 하고 있는 거였나.

 

“르네는 매그너스 님 꿈을 관리해 주는 거거든요? 거의 수호요정이거든요?”
“내 생각 읽은 것처럼 말하지 말고 인마, 저건... 초콜릿 병사구만.”
“네, 또 해치워 주세요! 가랏!”

 

짜증나긴 하는데, 아무튼 나는 병사들 사이로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생각해 보니 뭔가 애완동물이라도 된 기분인데. 나는 뺨에 튄 초콜릿을 닦아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손등에 오래된 흉터가 스쳤다. 아, 오래 된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왼 얼굴이 베인 적이 있긴 했었지. 만져보지 않으면 늘 눈치 채지 못하는 흉터다. 왼쪽 뿔과 함께 남은 흉터는, 내가 일족을 배신했다는 어떠한 증표 같은 것이었다.
정확히는 수호자에게 베인 거지. 내가 지배하는 왕국은 원래는 나와 같은 종족들이 와글와글하게 들이차 있었다. 그걸 배반하고, 조력자에게 도움을 얻어 싹 비워버린 것이 지금의 왕국.
살아남은 것들이 만든 보금자리가 있었는데. 최근에 실패했지, 아마. 속이 좀 쓰렸다. 나는 이를 앙다물고 이번에는 제대로 사탕을 세었다.

 

“자, 스물.”
“와아아~”

 

이번엔 다른 곳이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거기가 내가 늘 싸우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잠시 이마를 쳤다. 꿈속에서 너무 헤매다 보니 홈그라운드도 잊어버리고.
...그렇게 헤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튼간. 언제나처럼 선혈이 낭자했다. 내 칼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사랑해요.”

 

애절한 목소리였다.
그게 신경에 거슬렸다. 나는 그걸 보기 위해 멈춰 서려고 했지만, 르네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야, 뭐야, 저거 보여 줘!”
“바빠요, 얼른 얼른!”

 

그래서 결국 그거밖에 못 봤다. 이번엔 또 뭐냐, 하고 팔짱을 끼고 있으니 르네가 내 방으로 들어가는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우우, 역시 안 열려.”
“비켜 봐, 문도 못 열고 뭐 하냐?”
“우와아아.”

 

내가 문을 열자 르네는 박수까지 쳐 가며 좋아했다. 문은 멀쩡하게 열려 있었다, 그냥 르네가 당겨 보지도 않은 것뿐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얼굴을 쳐다보니, 샐쭉하게 웃었다.

 

“이제 가요, 얼른요.”
“또 뭐 해치워야 하는 거지.”
“네, 근데 쉬워요.”
“뭔데.”

 

저거요, 저걸 해치워 주시면 돼요.
하고 르네가 가리킨 건 침대 위의... 시체였다.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뭔가... 아무튼 시체였다. 팔다리는 묶인 채, 상체까지 포대기 같은 것으로 감싸여져 있었다. 피부에는 피가 묻어 있어서, 원래의 색을 짐작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미 죽은 거 같은데 뭘 또 해치워?”
“칼로 푹! 하세요!”
“내가 이제 시체 능욕까지 해야 하냐...?”
“원래 더한 것도 잘 하시면서, 뭘.”

 

나는 떨떠름하게 칼을 들어올렸다.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잠깐만.”
“네에?”
“이 포대기 좀 벗겨 봐.”
“얼굴 보고 죽이고 싶어서요? 아앗, 변태.”
“...잠깐 뭐 좀 확인하려고 그래, 벗겨 봐.”

 

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만약... 아직 살아 있다면, 그래서...
내가 죽여서는, 안 되는 거라면?

 

“안 죽은 거 같아서 그러시는 거죠?”
“...아무튼 좀 벗겨 봐.”
“자, 만져 보세요. 진짜 죽었어요.”

 

르네는 포대기를 벗기지는 않고, 그냥 그 속으로 내 손을 쑥 넣었다. 손에 감겨오는 끈적끈적한 피부가 소름끼칠 정도로 차가워서 나는 펄쩍 뛰었다.

 

“으왁, 뭐야 이거?!”
“죽었죠? 걱정하실 거 없다니까.”
“아니, 근데 좀...”

 

재빨리 빼낸 손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정말로 기분이 나빠서 뭐라 할 말도 없을 정도였다.

 

“영 궁금하시면 이따 처리할 때 마음대로 하셔도 되니까, 해치워~! 만 주세요.”
“이미 죽었으면 해치울 것도 없잖아...”
“매그너스 님 꿈속이니까 매그너스 님이 해치워야 한다는 거예요!”
“더 해치우기 싫어졌는데.”

 

그래도 나는 결국 칼을 들었다.
가슴팍으로 추정되는 곳에 검 끝을 누르고 있자, 왜인지 모를 기시감이 들었다.
이건 정말로 익숙한 기분이었다. 단단한 흉곽이 검 끝으로 느껴졌다. 어느 정도의 힘을 주어야 그것이 망가져 내릴지,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었다. 그게 이상했다, 아무리 평균치가 있다지만, 이렇게 익숙할 리가 없었다...

 

“매그너스 니임.”
“아, 알았어.”

 

보채는 목소리에 결국 칼을 내리꽂고야 말았지만.

 

“컥...!”
“힉...! 뭐야이거역시살아있었잖아! 살았잖아!”
“아니라니까요, 아니라니까~ 그건 죽었는데, 매그너스 님이 자꾸자꾸 살려놨던 거예요, 알겠어요?”
“뭐, 모, 모르겠는데.”
“그치만 이제 됐어요. 참 잘했어요!”
“영문을 모르겠는데...”

 

내리꽂은 순간에 포대기를 뚫고 튀어 오른 피가 찝찝했지만, 르네가 내 얼굴을 거의 덮듯이 껴안아서 어쩔 겨를도 없었다.
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노곤노곤해져서, 잠이 올 것 같은 찰나에, 문득 머리 한 구석이 섬뜩해졌다.

 

“왜... 나 졸리지?”
“그야 그야, 꿈이니까 현실로 돌아가려면 자야죠.”
“......거짓말이지, 그거?”
“진짜예요, 르네가 거짓말 한 거 하나밖에 없어요.”
“......뭔데?”
“그건요, 매그너스 님...”

 

나를 꼭 껴안는 감촉이, 역시 익숙했다. 포근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기분이 좋아서, 몽롱해져서... 아, 자면 안 되는데, 자면 안 되는데, 계속해서 중얼거려도, 어리광부리듯이, 기대고 싶어져서.

 

“나... 자기, 싫은......”
“안 돼요, 매그너스 님. 이제 일어나야죠.”
“싫, 어......”

 

그러나 결국에, 나는 또 다시, 어쩔 수도 없게...
눈이 감긴 순간에야, 그걸 알았다.

그건 르네의 드림 월드, 같은 게 아니라......

 

 

“아.”

 

쨍한 햇빛이, 사선으로 뺨을 비췄다.
늑골이 부서진 것 같았다. 갈비뼈 한 세 개쯤. 그래, 그 몸으로 전투 나가시면 안 돼요, 매그너스 님. 하고 울던 벨데로스 말을 안 들었지.
맞는 말이었다, 그 말을 안 들어서 크게 부상을 입었다. 며칠은 깨어나지 않을 부상을 입었다. 사실은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았다. 말을 듣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었으니까.

 

왜냐면 네가 죽었잖아, 르네.

 

네가 멋대로 내 곁을 떠났잖아. 뜬금없이 죽어서는, 시체도 남기지 않고 영영 사라졌잖아.
르네는 원래 죽지 않는다. 그런 종족이다. 내가 르네를 몇 번이고 죽인 적도 있다. 그래도 르네는 계속해서 죽어가면서, 사랑한다고 속삭이기나 했다. 그래 놓고 갑자기 정말 시체도 없이 죽었다. 믿기지도 않았다.
웃긴다. 예전에 그 녀석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다. 사람의 정신세계에 들어가는 법이라던가. 원래는 뭔가, 혼수상태 같은 거여야 하지만, 저번에 누가 살아있는 채로 다른 누군가의 정신 속으로 들어갔다든가. 그래서 거기 뭐가 있었는지 말해줬다든가.

 

그러니까 그 곳의 수호자는 귀여운 토끼 모양, 왜냐면 그 정신세계의 주인이 토끼를 제일 좋아했으니까.
그러니까 그 곳의 수호자는 귀여운 너의 모습, 왜냐면 그 정신세계의 주인이 너를 제일 좋아했으니까.

 

내가 세상에서 너를 제일 좋아했으니까.
뒤죽박죽하게 엉망이 된 내 머릿속을 정리하고 관리하고, 그러니까 매그너스 님 때문이잖아요, 하고 투덜거리면서, 결국 그래서 그 마지막 방에 있는 게 누구였을지는 잘 알고 있다.
그건 너였지. 죽은 너였지. 죽은 네가 미련이 되어서 내 머리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니까, 내가 그걸 치워야지만 나를 돌려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내가 생각했는지, 네가 생각했는지. 알 수도 없다. 나는 웃었다. 희미하게, 드문드문 기억나는 것은 네 수십 번의 기록. 너를 죽이는 나를 보고 멈춰 서서, 다시 고장 나 버려서 시작 지점으로 끌고 가는 너의 모습, 너를 죽이는 나를 보고, 그러고는 그 방으로 가서, 그게 너라는 걸 깨닫고, 또 망가져 버리는 나를, 다시 한 번 시작 지점으로 끌고 가는 너의 모습,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실패했으니까, 매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계속해서 실패했으니까. 어쩐지 뜬금없이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아마 그래도 따라간 건 너였으니까겠지.

 

깨우지 말지 그랬어.
깨우지 말았어야지.

 

난 너랑 같이 있고 싶었는데.

 

“정말 못된 꿈이잖아, 르네...”

 

너는 얼마나 끝까지 너무했는지, 꿈에서조차 나를 내쫓아 버렸다.
나는 웃으며, 눈물 자국 어린 시트를 꽉 쥐었다.
아, 그래서, 정말이지 네 말은 듣고 싶지 않았는데......

Editten By ITE(@Uruwashii_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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