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벨 콕스X캐롤라인 윈더
끔찍한 악몽이었다. 자신을 향해 손을 뻗어 제 뺨을 쓸어주고, 제 귓가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사랑스럽다고 바라보는 그 눈빛이, 현실과 다른 꿈이라는 걸 진즉에 자각하고 있었으나 금방 깨지 않는 탓에 지속되는 그의 애정표현이 점점 끔찍한 무언가로 남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애정표현이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하는구나 따위의 생각이 들 때 쯤에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가? 캐롤라인 윈더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아마, 그럴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꿈이 아니랄까봐, 또다른 자신의 모습을 한 '무언가' 가 답을 해주었다. 사랑하지, 사랑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잖아, 하고. 캐롤라인은 꿈 속의 자신마저도 스스로가 생각한 것이 아닌, '무언가' 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는 건 웃기게도, 자신을 사랑스레 바라보는 아벨 콕스의 모습도 스스로의 상상이 아닌, '무언가' 로 인해 등장한 것으로 일종의 악마가 아닐까 생각했다. 아, 혹시 시련인가? 야마누스님이 내리는 시련 같은 거. 그게 아니라면 어딘가 세뇌되어 왔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끔찍할 뿐이다. 그도 그럴 게 캐롤라인은 이딴 걸 바란 적이 없으니까. 사랑하는데도, 심지어 저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사람이 꿈 속에서라도 주는 애정이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스스로가 생각해도 흔한 감정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에 대한 사랑을 부정할 생각도 없었다. 자신도, 그도 서로가 1순위일 수는 없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그 상대라 사제라면, 1순위는 커녕 애초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캐롤라인이 알고 있던 아벨 콕스라는 사람은 저러지 않았다. 아벨 콕스도 아니었지만. 아, 이 꿈에서 어떻게 깨어나야하나. 이제 단순히 그런 생각만 들 뿐이었다.
*
" 네가 나보고 사랑한다고 했어. "
" 뭐? "
그저 말만 했을 뿐인데, 얼굴을 보지 않아도 끔찍한 말을 한다는 표정과 목소리로 자신의 말에 대답하는 아벨을 바라봤다. 한 두 번이 아냐, 계속 그런 꿈을 꿨는데 이상하지. 애정결핍이야? 그럴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르는 게 아냐, 애정결핍이야. 그러다 너 죽는다니까? 죽을지도 모른다는 아벨의 말에 캐롤라인은 입을 다물었다. 죽어도 괜찮잖아,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는 걸 아벨이 모를 리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알고 있어도 말할 생각은 없다. 뭐, A급 사제를 잃지 않기 위한다는 핑계가 먹힐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사제 따위에 관심 없다는 건 알고 있으니 그다지 소용없다. 신경 쓸 마음도 더 없고. 하지만 캐롤라인에게서 나온 말은 의외의 말이었다. 그녀를 보고 있지 않은 탓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몰랐던 탓일까, 아니면 그녀가 내심 죽길 바랐던 게 생각으로 잡힌 것일까. 들리는 답에 평소와 달리 그녀에게 시선을 두었다.
" 죽을 맘 없어. "
적어도 네가 죽으라고 하기 전까지, 덧붙인 말에 그럼 그렇지 하고 말았지만. 새삼 번거롭다. 제 신분에 어떻게 남 보고 죽으라는 말을 할 수 있는가, 물론 수도 없이 해왔고 바로 위 상사는 벌레 죽이듯이 사람을 죽이는데 못할 이유도 없긴 했다. 아직은 아냐, 겨우 대답하고 아벨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이로써 그녀가 죽길 바란다는 마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단지, 죽어도 알 바가 아닐 뿐이다. 그건 그렇고 꿈이라...
" 사랑한다고 말해서, 어땠냐. "
" ... ... "
괜한 궁금증에 물은 말이었는데, 아무런 말이 없자 다시 캐롤라인을 바라보았다. 왜 답이 없어? 좋았을 게 뻔하잖아, 그렇게 나를 좋다고 말하면서. 드물게도 어두워진 낯에 아벨의 미간이 좁혀진다. 아벨은 이 표정을 알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 트라우마가 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저절로 짓는 표정이었다. 지독한 악몽이었어, 중얼거리듯 말하는 목소리에 아벨의 말문은 턱하니 막힌다. 왜냐고 묻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다지 관심 없으니까. 하지만 유독 그녀가 어두운 낯이 될 때, 아벨은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었다. 그녀에 대한 동정일지도 몰랐다. 저도 모르게 갖는 동정심 따위. 그게 아니면 도저히 설명할 부분이 없다. 자신이 그녀를 좋아한다거나 아낄 맘은 들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저 그게 사실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갖게 되지 않는 게 정확하다. 덕분에 이런 맘이 왜 드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왜 물어봤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에게서 무슨 대답을 바랐나? 이어지는 침묵에 뒤늦게서야 캐롤라인이 아벨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음에 봐, 라는 말을 겨우 내뱉고 멀어진다. 그저 이 정도인 것이다. 자신과 그녀의 사이가. 캐롤라인도 알고 있다. 그 이상을 바라는 것도, 이룰 수 있다는 생각 따위 들지 않는다. 그럴 수가 없다. 그 사실이 슬프고도, 끔찍한데 맘 구석 어딘가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가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게 아주 조금은 마음에 들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끔찍한 거겠지. 그 꿈이, 내 욕망이. 단지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