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은 무언가에 쫓기듯 눈을 떴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가을임에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자는 버릇 탓인지, 혹은 꿈자리가 사나웠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벌써 석 달째였다. 이렇게 찝찝한 기분으로 눈을 뜬 것이. 조금 전까지도 생생하던 눈앞의 장면이 점차 기억에서 흐려져 갔다. 센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세 그대로 눈을 두어번 깜빡여 잠을 몰아냈다. 머리가 조금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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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 re autem somnium, somnium est 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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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지?’
최근 계속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인지, 평소보다 더 피곤했다. 암막 커튼 사이로 살짝 비치는 밖의 모습이 꽤 어두웠다. 곧 겨울이 다가와서 그런지, 아니면 일찍 눈을 떠 그런 것인지 잘 구분이 가질 않았다. 가로등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이 근처는 멀쩡한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 저녁이면 온통 어두컴컴해지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렇게 밖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의아한 마음에 습관처럼 고개를 돌려 시계를 확인하려던 센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엊그제 탁상시계의 건전지가 떨어졌지만, 미뤄두고 갈지 않았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멈춘 시계는 1시에 멈춰져 있었다. 센은 졸음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대신 커튼을 걷었다. 역시 사방에 검은 하늘이, 꼭 한밤의 모습이었다. 가로등도, 별도 없는 밤은 꽤 무서웠다. 어둠을 썩 좋아하지 않는 센은 다시 커튼을 덮어두고는, 방 한곳에 자리한 라디오를 틀었다. 조금 지직거리는 잡음이 들리더니, 이내 귀에 익은 목소리가 울렸다.
[“아아, 들려~? 응, 오늘부터 심야 라디오 시작~♪사쿠마 리츠입니다~”]
[“다들 알겠지만! 츠키나가 레오입니다!”]
[“로아이다 유리~ 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나즈키 히나예요. 그럼, 잘 부탁 드립니다!”]
[“새벽 세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어~ 아직까지도 깨어계시다면 피곤하실지도 모르지만!? 즐겨 주세요!”]
[“다들 알고 있을 것 같지만, 자기 전에 즐기기는 조금 힘들지도… 방음이 잘 되지 않는다면, 볼륨을 줄여줘...~.”]
센은 저도 모르게 작게 웃었다. 새벽에 라디오를 한다더니, 마침 오늘이 첫날이었던 듯했다.다. 센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에 놓여 있던 핸드폰을 들고 다시 라디오 앞에 자리잡았다. 마침 라디오 본방을 들었으니, 문자라도 보내볼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핸드폰을 켜자, 라인 알림과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자정이 조금 지나 잠들었으니, 그 사이 연락할만한 사람은 유리나 히나 뿐이었는데, 그 둘은 요즘 한창 바쁜 시기라 알람이 쌓일 리가 없었다.
‘이 시간에 누구지…?’
센은 찌뿌둥한 몸을 쭉 늘려 스트레칭을 하고는, 부재중 전화와 라인을 차례로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도 라인도 토리에게 와 있던 것이었다. 토리는 평소 센과 다를 바 없이 일찍 잠드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 시간에 라인이 온다는 것은 한 가지 이유밖에 되지 않았다. 센은 잠기운이 가시는 것을 느끼며, 토리와의 채팅방을 꾹 눌렀다.
[히메미야 토리: 센! 지금은 자고 있지? 습관처럼 전화 버튼을 눌러 버려서, 금방 끊긴 했지만, 혹시 시끄러워서 깼다거나 하면 정말로 미안해.]
[히메미야 토리: 우우, 저번에 말했던 멜버른 공연이 오늘로 앞당겨졌대. 오늘 놀러 가기로 한 건 가기 힘들 것 같아…. 미안해. 갔다 와서 마음껏 놀아줄 테니까 기다려 줘야 해? 지금 벌써 공항이야.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프면 꼭 연락해야 해! 도착하면 연락할게.]
센은 한숨을 쉬었다. 또, 이렇게 갑작스럽게 통보식으로 연락만 하고, 약속을 깨고. 피네가 정신없이 바쁜 시기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 센은 조금 불만스러운 시선으로 토리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담긴 그의 프로필을 노려보다가 이내 짤막한 답변을 보냈다.
[하야미네 센: 방금 깼어. 전화벨 때문에 깬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는 말구. 요즘 조금 꿈자리가 사나운 것 빼고는 나쁘지 않아. 그보다 토리가 일정이 너무 많아서 힘든 거 아냐? 아프지 마. 공연 열심히 하고, 방송 꼭 챙겨볼게! 보고 싶어. 기다릴게!]
라인을 보낸 센은, 잠시 투덜거리다가 다시 라디오에 집중했다. 아쉽지만, 토리에게 잠깐 답장을 한 사이에 10분 사연코너는 끝이 나 있었다. 센은 다음을 기약하며 라디오 앞에 있는 작은 협탁에 엎드리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어서 노래가 흘러나오고, 저들 딴에는 안 들리게 말한 건지 작게 속삭이는 잡담 소리가 섞여 나왔다. 미리 주의했던 데로, 자기 전 틀어놓기에는 무리가 있는 선곡들이었지만, 센은 어쩐지 잠이 오는 것만 같았다.
[“~…… 마지막 곡은 재밌게 들었어? 아쉽지만~ 이제 끝내야 할 시간이야. 좋은 밤 보내.“]
[”다들 좋은 꿈 꿔! 히나쨩, 우린 집으로 가자~!“]
[”뭣, 왜 둘이서만?!]
[“에~ 츠키피, 벌써 잊었어? 우린 바로 다음 스케쥴 가야 해.”]
[“벌써?! 아직 시간 남았잖아!]
[”시간 한참 전에 오버했어. 오히려 늦었는걸. 아까 전부터 계속 이즈미한테 전화 와.“]
[”맞아, 시계 봐…, 어? 마이크 안 껐어!“]
센은 마이크가 꺼지는 소리까지 듣고 나서야, 휘적거리는 손으로 라디오를 껐다. 왠지 오늘은 악몽을 꾸지 않을 것만 같았다.
***
센은 의아한 눈을 깜빡였다. 익숙한 자신의 자취방이지만, 바람이 쌀쌀한 것이 제가 알던 날씨가 아니었다. 꿈. 꿈이다. 자각몽은 오랜만이었다. 센은 아픈 눈을 꾹 누르면서, 활짝 열려있던 창문을 닫았다. 불어 들어오던 바람은 막혔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을 열어 두었던 건지 집 전체가 차가웠다. 추위를 그다지 타는 편은 아니지만, 창문을 이렇게 오래 열어둘 일은 딱히 없었기에 상당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센 씨. 일어나셨나요?”
“…어? 아, 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센은 퍽 생생한 꿈이라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기 위해 막 일어나려 했으나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다시 넘어졌다.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듯, 근육이 전부 풀려 있었다.
센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제 몸을 황망히 내려볼 사이, 어느새 들어온 하지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센을 봤다. 인기척을 느낀 센은 하지메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기울이곤 물었다.
“어떻게 들어왔어? 토리가 비밀번호를 알려준 건가…?”
“네? 네에. 저, 오늘은 좀 괜찮으신가요…?”
“? 응, 괜찮아. …평소에는 안 괜찮았어?”
“…아뇨, 괜찮으시면 다행이에요. 오늘은 점심 드시나요?”
‘오늘은?’ 꿈이긴 하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하지메의 수상스러운 태도도, 저 말들도. 센은 평소 적더라도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 편이었다. 물론 바쁠 때면, 거를 때도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바쁜 시기는 아닌 것 같고, 애초에 과할 정도로 마른 몸 때문에 활동기에도 잠은 못 자도 밥은 챙겨 먹는 것이 습관이었다. 센은 정말 이상한 꿈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센이 예상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센의 몸 상태는 영 움직일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것을 깨달은 센이 살짝 민망한 웃음을 지어 보이자, 하지메는 입술을 꾹 물었다가 놓았다.
“…방으로 가져올게요.”
“응, 고마워. 그런데 토리는? 지금 바쁘대?”
어색하게 웃으며, 미안, 하고 말을 건낸 센은 작은 의문점을 하지메에게 물었다. 제 몸 상태가 좋지 않다면, 분명 토리가 곁에 있어 줬을 텐데. 꿈속이기 때문일까. 현실과 맞는 부분이 도통 없었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잘못 들은 것 같아서요.”
그리고 과할 정도로 동요하며, 저렇게 되묻는 하지메 또한. 센은 정말 이상한 꿈이라는 생각을 재차 하며, 말을 되풀이했다. 토리는 지금 바쁘대?
센은 평소와 다름없게 물은 것이었으나, 하지메는 전보다도 더 크게 동요하며, 더듬더듬 센의 이름을 불렀다. 보랏빛 눈동자에는, 머뭇거림과 작은 공포 또한 담겨 있었다. 머뭇거림이 길어지고, 센이 막 말하기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는 말의 서두를 꺼낸 순간, 우는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가 센에게 닿았다.
“저, 저어, 센 씨… 그러니까, 토리 군은…”
하지메의 목소리가 작아지며,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엉망으로 노이즈가 낀 답이 흘러나왔다.
“석 달 전에… 비행기 사고로…….”
거짓말. 하지메의 짧은 말 몇 마디가 책 한 권이라도 되는 듯 느리게 흘러갔다. 말이 중간중간 끊겨 들려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센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기쁨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마치 비웃음 같기도 했고, 어이없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이 무엇이었든 간에, 센이 멀쩡한 이성을 유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센이 숨 가쁘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꿈 안인데 왜 이렇게 진짜 같지. 일어나면 토리는 웃으면서 날 반겨 줄 텐데. 자각몽은 왜 항상 악몽인지 모르겠어.”
지독한 악몽이었다. 토리가 죽어 이 세상에 없는 꿈이라니, 꿈으로도 보고 싶지 않던 끔찍한 악몽이다. 토리와의 마지막이 마지막 인사조차 없는, 그런 쓸쓸하고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서는 안 됐다. 토리의 바램도, 그 무엇도 남지 않은 곳에서 자신이 멀쩡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전부 잊고 싶었다. 전부 잊어버리고, 눈을 감고, 저편의 꿈 너머에서 살아가고 싶다. 빨리 잠들어야만 했다.
현실 같은 꿈속에서 영원히…
***
“센~! 보고 싶었어!”
“앗, 토리…? 방금 전에 맬버른 가는 비행기에 탔다고 했잖아? 벌써 온 거야?”
“에~ 센, 꿈이라도 꿨어? 그건 일주일 전이겠지!”
센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깜빡였다. 확실히 오늘도 찝찝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게다가 오늘은 슬픈 기분마저 들어서, 일어나자마자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당황하기도 했었다. 센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응, 그러게. 꿈이었나 봐. 사실 하나도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의 현실은 마치 꿈 같다. 꿈인지, 현실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센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토리의 손을 꼭 쥐었다. 센의 기억 속 토리와 꼭 같은 모습에 살아 있는 사람의, 따듯한 온기가 느껴졌다.
“… 나도 보고 싶었어.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