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시 이제 …… 그만두는 게 좋을까.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오만하게도 아오이 나츠카는, 에이지가 자신에게 끝내자는 말을 할 리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매서운 추위 때문에 청각이 잠시 이상해졌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아니면 겨울바람의 사나운 소리나, 거센 파도소리를 착각한 것이 아니었는지. 아니, 적어도 잘못 들은 게 맞다는 증거는 댈 수 있었다. 그는 여전히 제 손을 꽉 잡아주고 있었다는 것. 에이지의 손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온기는, 언제나 그가 츠카의 곁에 있어줄 것이란 사실을 재확인시켜왔으니까. 그러니까 잘못 들은 것이 맞다고 애써 믿으면서 …… 츠카는 에이지의 쪽으로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거기엔 초점 없는 보랏빛 눈동자가 있었다.
자신이 아닌, 어딘가 먼 곳을 아득하게 바라보고 있는 눈. 아, 그건 자신과 함께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었던 공허한 눈동자였다. 그 눈을 보고 나서야 츠카는 겨우 방금까지 했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늘 자신과 같이 기뻐했으면 기뻐했고, 슬퍼했으면 슬퍼했었던 연인이 지금 텅 빈 감정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런 계획 없이 함께 도망쳐 나와서, 지금까지 둘이서 보낸 일주일의 시간 안에서조차도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는데. 늘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다정했던 그도, 결국엔 지쳐버리고 만 걸까?
- …….
어떤 말을 꺼내는 게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먼저 사과를 해야 할까. 아니면, 아니면 자신을 절대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붙잡아야 하는 걸까. 아니다, 그냥 자신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것으로 에이지 씨가 괴롭지 않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자고 할까? 생각하는 모든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더 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면 차라리 한 고집이라도 강한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이렇게 우유부단한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에이지의 행복을 바라거나, 아니면 오로지 자신만의 행복을 위하거나.
하지만 자신은 에이지의 행복도, 그리고 그의 행복 사이에 반드시 자신이 연관되어 있어야 한다는 욕심도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은 아직도 제대로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포기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욕심쟁이.
도무지 성장하질 못하는 사람.
나쁜 사람.
- 츠카 씨, 울어요 ……?
문득 따뜻한 두 손이 자신의 양뺨에 닿았다. 그건 에이지의 손이었다. 아, 어느샌가 울고 있었구나. 바보같이 제대로 말을 먼저 못하고 또 눈물부터 흘려버리고 말았다. 츠카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다시 에이지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좀 전의 공허함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오직 평소와 같은 다정함만을 담은 에이지의 눈을 보자, 아까까지는 도무지 떨어지지 않았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 그러면, 그러면. 이제 저랑 에이지 씨랑 헤어져요?
- 네?
자신의 무의식은 확인사살을 바랐던가. 하지만 도무지 다른 말들은 이야기할 수 없었다. 방울방울 흘러내리던 작은 눈물들이 세찬 바람에 날려, 어느새 츠카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었다. 에이지는 눈을 크게 뜬 채 꽤나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 무슨, 무슨 소리예요?
- 아까, 이제 그만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 말했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저는. 거기에 대해서 무슨 말을, 말을 …… 해야 할지 잘 모르겠, 어서.
- 아 ……! 미안해, 츠카.
그는 츠카의 뺨에 대고 있던 손을 떼고 그 대신 양팔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츠카를 껴안을 때 일어난 반동 탓에, 얼굴을 가리기 위해 썼었던 검은색 후드가 벗겨져 버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츠카를 안고 있었다. 품에 완전히 폭 안겨져 온 시야가 까매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 도리어 안정감을 주는 듯했다.
- 아니야, 그런 뜻이 아니었어. 나는 절대 츠카를 놓지 않아.
- …… 정말?
- 정말. 같이 약속했었잖아. 언제까지나 잡은 손을 놓지 않기로. 같이 미래로 나아가기로 약속했었잖아.
- 그런데 왜 ……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 …… 츠카를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었어. 최악의 경우에는 다른 걸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 다른 것?
츠카는 에이지의 품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미미하게 젖어 있는 듯한 보라색 눈동자와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그는 츠카에게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미소는 아까처럼 공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에이지의 그 미소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깊은 곳을 아릿하게 만드는― 그런 웃음이었다.
왜일까?
자신을 포기하지 않겠다는데. 그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던가? 자신을 놓지는 않겠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그 미소를 보니 왜 이렇게,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인지.
불안한 예감은 왜 언제나
- 내가 아이돌을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
적중하고야 마는 걸까.
이 말에는 그 어떤 대답도 생각할 수 없었다.
- 놀랐죠, 미안해요 ……. 하지만 이건, 늘 본질적인 문제였기도 하니까.
그 순간 주마등처럼 수많은 기억들이 그녀의 머릿속을 치고 갔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전부 각자의 멜로디를 담고 있었다. 어떤 것은 봄의 생명력과 싱그러움을 담고 있었고 어떤 것은 쓰고도 달았으며 또다른 것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행복을 갖고 있었다.
오오토리 에이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녀는 맨 처음 무엇을 했었나?
…… 그의 노래를 들었다.
처음뿐만이 아니다. 에이지에게 닿기 위한 여정에서도 츠카는 음악과 만났다. 그와의 인연 중 음악을 제외하면 남는 것이 무엇이 있나 싶을 정도로, 음악과 자신들은 너무나도 깊게 연결되어 있었다. 주마등 속의 기억을 스치며, 그 사이의 멜로디를 들으며 츠카는 이 사실을 더욱 더 뼈저리게 느꼈다. 에이지와 마음을 주고받기 시작한 계기도 음악. 에이지가 자신에게 사랑에 빠진 순간도 함께 음악을 얘기할 때였었다고 했다. 연애하기 전에 겪었던 모든 일들, 그리고 자신과 묶인 운명의 리본. 그 전부가 …… 음악을 빼놓고는 절대로 논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이돌로서의 오오토리 에이지를 빼놓고는.
- 예전에 …… 기억나? 촬영장에서 츠카가 쓰러졌을 때. 나는 그 때 그걸 눈앞에서 봤어. 하지만 츠카에게로 바로 달려나갈 수 없었어. 촬영 중에 그렇게 달려나갔다간 …… 우리 둘의 사이가 들키고 말았을 테니까.
그건 벌써 몇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신경쓰고 있었구나. 아, 아니다. 이건 어쩌면 에이지의 배려일 수도 있겠다. 부디 이게 제 때문이라고 탓하지 말아달라는 그런 배려.
하지만 에이지 씨, 당신은 음악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잖아요. 나는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더군다나 당신이 사랑하는 음악이 없었더라면 우리도 존재할 수 없던 것이었는데.
그 순간 츠카의 기억 가운데에서, 아름다운 보랏빛 나비가 하나 떠올랐다. 그건 에이지와 자신이 함께 자아냈던 첫 번째 멜로디. 나비의 날갯짓을 담았던 멜로디.
[에이지 씨는 얼마든지 더 예쁘게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마음껏 날아올라 주셨으면 좋겠어요, 에이지 씨가 원하는 만큼!]
땅 주변만을 맴돌던 나비는 자신의 말이 울리자 높은 하늘로 날갯짓하기 시작했다. 나비가 지나간 자리의 바람은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별을 뿌리며 흩어졌다. 더 높은 곳을 향해서 날아가는 나비. 아름다운 나비. 하지만 그 나비는 더더 높은 곳으로 날아가다가, 태양빛에 날개의 밀랍이 녹아 추락한 이카루스처럼― 깊은 바다에 떨어져버리고 말았다. 바다에 잠긴 나비, 그 날개는 거센 파도에 젖는다.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왜 나비와 에이지, 이중의 화면이 이렇게나 생생하게 보이는 걸까. 도무지 모르겠다. 이를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꼭 감았지만 왜인지, 그래도 눈앞이 보였다. 츠카는 결국 자신의 손을 들어올려 두 눈을 가려버렸다. 그제서야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
- 그 외에도 평범한 연인들이 할 만한 것들을 다 못해봤으니까. 지금 같이 바다에 온 것도 처음인데 …….
그래서 지금은 후드가 벗겨져 있는 걸 상관하지 않는 건가요. 다른 누군가 이제 우리를 봐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이돌을 그만두고 나를 선택함으로써 당신이, 오오토리 에이지가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그리고 내가.
당신이 사랑하는, 음악이라는 요소를 당신에게서 떼어놓고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정말?
그게 오오토리 에이지 씨의 '진정한 행복' 의 결론인가요?
아오이 나츠카는 오오토리 에이지를 밀어내고 품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 에이지가 입고 있는 망토의 후드를 잡고 다시 들어올려 그의 머리에 씌웠다. 후드의 가장 겉부분의 자락이 에이지의 눈을 덮을 때까지. 자신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건지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이 없었다. 소리 내어 울고 싶어하는 몸의 충동 때문에 입술이 세차게 떨렸다. 하지만 츠카는 말해야 했다. 이건 어영부영 울면서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 에이지 씨, 저는 당신을 불행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쳤다. 목소리가 엉망이었지만 상관없었다.
- 아이돌 하는 거 즐겁잖아요! 에이지 씨는 음악과 만날 때 가장 행복해지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걸 저 때문에 포기하지 마세요, 저는, 저는 ……!
이 마음만 제대로 닿을 수 있다면.
- 저는 에이지 씨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거지 불행하게 만들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런 건 제가 용납 못 해요!!
그 순간, 수평선 너머의 작은 빛이 한순간 크게 빛나며 주변을 모두 하얗게 덮어버리고 말았다.
"츠카 씨!"
그리고 빛 속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츠카는 방금까지가 전부 꿈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짧았지만 긴, 악몽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꿈이었다. 예전 한창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꾸던 좀비 악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무서운.
그랬지. 에이지와 츠카는 이미 바다를 떠났었다. 아마 사무소 측에서 계속해서 추적이 붙고 있을 것이기에, 같은 장소에 오래 머무르면 안 되었으니까. 꿈에서는 이미 함께 도망간 지 일주일이 지난 상황이었지만 실제로는 3일 정도밖에 안 되었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도중, 아마 잠시 잠들었던 모양이다.
"깨워서 미안해요. 안 깨우려고 했는데 계속 울고 있어서 ……."
"에이지 씨 ……."
"응, 내가 여기 있으니까 ……. 괜찮아. 무서운 꿈 꿨어?"
사랑스러운 사람. 자신의 연인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럽다.
그래. 그러고 보니 언젠가 예전에는 분명 그런 적이 있었던 것 같다. 에이지가 빛나는 모습에, 그 반짝임에 마음을 온통 빼앗겨버렸던 주제에 아오이 나츠카는 아주 잠깐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당신을 완전히 독점해버리고 싶다고. 그래서 이따금은 에이지가 만약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좋았겠다고.
당신은 아이돌이었기에, 만인의 연인이었으니까. 당신이 내 눈동자 안에서만 찬란하게 빛나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그건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에이지 씨, 저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오오토리 에이지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렇게나 사랑스러우니까.
오오토리 에이지는 더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당신이 사랑하는 음악과 함께.
"이제 돌아가요 …… 사무소로 다시."
"……?"
그저 나는 당신이 걷는 행복의 길을 옆에서 같이 걷고 싶다고.
"에이지 씨를 포기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저는 다시 한 번 사장님께 말할래요. 제게 에이지 씨를 달라고!"
음악으로는 얻을 수 없는, 그 어떤 부족한 행복만큼은 자신이 채워주고 싶다고.
"갑자기 이런 말 꺼내서 미안해요. 하지만 우리 마주 봐요, 에이지 씨. 저는요, 에이지 씨가 행복한 것도 중요하고, 그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가 행복한 게 중요해요 ……."
"…… 츠카 씨."
"에이지 씨에게 제가 말했었잖아요. 날아올라달라고 …… 원하는 만큼. 도망가는 걸로는 결론이 나지 않아요. 언젠간 무너져버리고 말 거예요. 우리 스스로 온실 안에 갇혀버리는 건 그만둬요."
'자신의 행복' 은 타인 때문에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꿈속의 에이지처럼, 그가 그렇게 자신 때문에 다른 걸 내려놓겠다는 결심을 하는 건 사양하고 싶다.
츠카가 에이지를 사랑한 이유, 에이지의 곁에서 있고 싶었던 이유, 그리고 있기로 결심한 이유는.
"전 에이지 씨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 아하하!"
"…… 엣?"
츠카의 말이 끝나자 에이지는 잠깐의 정적 끝에 환한 웃음을 터뜨렸다. 의외의 상황에 놀란 츠카는 눈만 천천히 깜빡일 뿐 더 이상의 말을 잇지 못했다. 아, 그저 눈부셨다. 그가 왜 웃는지는 아직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에이지가 웃고 있다. 꿈속의 에이지가 자신에게 지어보였던 그런 아릿한 미소가 아닌, 진정한 기쁨을 담은 듯한 햇살 같은 웃음으로.
"아하하, 미안해요. 츠카 …… 음, 아니다. 츠카 씨!"
"네, 네!"
"고마워요, 나의 사랑스러운 츠카 씨. 어제부터 기분이 좋지 않아보이던 건 이것 때문이었나요?"
"어 ……?"
"그랬죠?"
"어, 티, 티 났어요?"
"그럼요? 같이 점심 먹을 때까지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침울해 보여서."
에이지는 여전히 밝은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츠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요, 돌아가요. 나의 츠카 씨. 츠카 씨가 돌아가자는데 같이 가야죠."
"에이지 씨는 그래도 괜찮아요 ……? 그, 저. 아까도 말했지만. 에이지 씨를 포기한다는 뜻도 아니고, 다른 어떤 것이 에이지 씨보다 소중하다는 것도 아니에요. 이 세상에 에이지 씨만큼 소중한 건 존재하지 않지만. 사실 에이지 씨만 있으면 저는 괜찮을 지도 모르죠! 저는 그걸로 충분할지도 몰라요! 하지만, 하지만 …… 그건 에이지 씨가 최고로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이 아니니까 …… 핫."
에이지는 자신의 검지손가락을 살포시 츠카의 입술 위에 내려놓았다. 마치 봄에 활짝 핀 벚꽃잎에 내려앉은 나비처럼. 그렇게, 부드럽고 가볍게― 애정을 담아서.
"쉿, 진정해요. 츠카 씨의 마음은 알고 있으니까."
"…… 좋아해요."
"…… 츠카는 다른 말을 좀 더 좋아하지 않아?"
"사랑해요."
"나도 사랑하고 있어, 츠카."
언제나, 라는 속삭임이 들린 동시에 입술에 닿았던 검지손가락이 떨어져 나갔다. 그 대신 이번엔, 다른 부드러운 것이 닿아 왔다. 사랑스러운 연인의 입술이 가볍게, 츠카의 입술 전체에 닿았다 떨어졌다. 주변의 공기가 전부 붉게 달아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돌아가는 기차를 끊어야겠네요. 그렇죠?"
"네 ……!"
"맞아요, 돌아가야죠. 우리 츠카 씨 할 것도 많을 텐데 ……."
"에, 에이지 씨야말로 스케줄이."
"뭐, 예전에는 강제 스케줄 취소를 한 적도 있었는걸. 아버지가 어떻게든 하시지 않았을까?"
"아, 에이지 씨 어디 가요?"
"표 끊으러요?"
"제가 갈게요!"
무사히 사무소로 돌아갈 때까지 그는 최대한 덜 움직이는 것이 좋을 테니까. 츠카는 일어서려는 에이지를 앉히고 자신이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에이지가 자신의 손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
"…… 네?"
"가기 전에, 오랜만에. 새로운 약속을 하나 더 해요, 츠카 씨."
에이지는 잡고 있던 츠카의 오른손을 살살 쓸어내렸다. 그리곤 손가락을 부드럽게 움직여, 접혀져 있던 츠카의 새끼손가락을 하나 폈다. 그리고 자신도 새끼손가락을 편 채로 그대로 손가락을 걸었다.
"전 츠카 씨를 절대로 놓지 않을게요. 그 어떤 순간에서도."
에이지와 자신은 늘 약속을 했다.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지키는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약한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무엇이 되었든 간에 상관없이, 함께 새끼손가락을 거는 순간 그건 혼자만의 것이 아닌 서로의 것이 되었다.
"아까 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죠, 츠카 씨는."
"……."
"언제나 사랑스러운 나의 츠카 ……."
걸고 있는 새끼손가락에, 한순간 부드러운 힘이 느껴졌다. 눈을 한 번 꼭 감았다 다시 뜨니 그 앞엔 에이지의 보라색 눈동자가 있었다. 츠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반짝임을 가득 담고서.
"이미 이렇게 사랑스러운 당신이 날 사랑해줬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츠카 씨."
에이지 씨, 우리의 페이지에 배드 엔딩이란 있을 수 없어요. 저는 메리 배드 엔딩도 사양이에요. 알죠? 제가 사랑하는 건 언제나 최고의 것. 그러니까 최고의 행복만이 있어야 해요, 에이지 씨와 저의 이야기엔.
완벽을 사랑하는 아오이 나츠카를 선택해준 오오토리 에이지 씨에게.
제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완벽한 해피엔딩을 …… 반드시 안겨드리고야 말겠어요!
반드시. 저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당신의 곡을 쓰고 싶어 모든 걸 걸고 뛰어들었던 어느 예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