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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w.원하

 

 

 

  헤어질까요. 흐린 날씨에 소파에 앉아 유리의 어깨에 기댄 연인이 꺼낸 말이었다. 밖에는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졌고 어째선지 집 안에도 비가 올 것만 같았다. 둘은 아슬아슬했다. 길고 얇게 이어져오던 실이 끝을 보였다. 둘은 싸우지도 않았고 안맞지도 않았다. 싸우더라도 금새 화해했고 잘 맞았고 어느 연인들보다 사이가 좋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둘 모두 서로를 너무 좋아했다. 유리는 그럴까라고 답하면서도 연인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걸 자신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날씨가 흐려서 꽃구경도 못가고 봄의 끝을 맞이할 것만 같았다.

 

  “헤어질지도 모른다고? 둘이? 맨날 내 앞에서 난리를 피우던 그 둘?”

 

  유리 프리세츠키, 그러니깐 유리오는 카츠키 유리와 그의 연인이 얼마나 서로를 사랑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싸워도 누군가 상대방에 대해 욕을 하면 화를 내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했다. 링크장은 한기가 돌았지만 카츠키 유리의 목덜미에는 땀이 흘렀다. 매일 똑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해왔지만 어딘가 아슬아슬해서 꼭 예전에 봤던 모습과 비슷해서 유리오는 짜증이 났다. 밀라는 어쩌다 만났던 그녀가 어딘가 모르게 카츠키 유리와 닮았다고 말했다. 둘 다 아슬아슬. 카츠키 유리의 스텝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가 지나갈때마다 얼음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것도 변한게 없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크리스, 나는 유리가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카츠키 유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누구보다 네가 잘 알고 있잖아?”

 

  모자와 안경으로 가려도 분홍색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눈물을 머금은 눈이 흔들렸다. 자주 둘의 연애상담을 해주던 크리스가 그녀를 불렀다. 일본에서의 아이스쇼를 위해 일본에 있는게 다행이라고 생각됐다. 둘 앞에 놓여진 커피는 이미 식은지 오래였다. 크리스는 사랑해서 닮는게 가끔은 독이 된다고 생각했다.

 

***

 

  일본의 남자 피겨 스케이트 국가대표 선수, 카츠키 유리가 참가한 아이스쇼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의 애인도 아이스쇼가 이뤄졌던 곳에 조용히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와 카츠키 유리는 더워지기 시작하면 헤어지기로 결정을 했다. 그녀는 하세츠에서의 살림을 정리하고 아마 먼 곳으로 가지 않을까 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아이스쇼가 끝나고 선수대기실에 들렀다. 들고온 꽃다발의 향기가 유독 진한 날이었다. 봄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눈 앞이 흐려저서 후각이 예민해진건지 그녀는 알 수가 없었다. 카츠키 유리에게.

 

  “오늘도 정말 멋졌어요.”

 

 “원하가 멋지다고 해줘서 기쁘다. 보러와줘서 고마워.”

 

  둘만 자리에 있던 건 아니었지만 다른 선수들은 숨을 죽였다. 싸운 것 같지도 않다. 꽃다발을 사이에 두고 껴안아도 둘의 표정이 슬퍼보였다. 평소같았으면 하트를 계속 날리고 있어야 하는데 왜 이렇게 풀이 죽었는지 유리오는 짜증이 나서 발로 의자를 찼다. 둘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은 선수들이 꽃다발에서 떨어진 꽃잎을 보고 확신했다. 둘은 이제 헤어지는 구나.

 

  **

 

  여름이었다. 카츠키 유리와 사쿠라노 하나비는 헤어졌다. 하세츠의 여름은 여전히 더웠고 발로 파도를 맞는 일은 시원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둘이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카츠키 유리는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녀도 외국에서 촬영을 했다. 그녀가 나온다는 이유에서 버릇처럼 보게 된 잡지에 그녀의 인터뷰가 실려있었고 카츠키 유리는 넘겨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페이지의 글씨를 하나 하나 읽어 내려갔다.

 

  앞으로 무엇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일본말고 다른 여러나라들을 돌아다닐 생각입니다. 아주 오랜시간을 거쳐서요. 그러다가 마음에 드    는 나라가 있으면 그곳에 살 생각을 하고 있어요.

 

  카츠키 유리는 잡지를 접어두고 다시 빙판 위에 섰다. 그의 몸선은 여전히 아름다웠으며 매끄러웠고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카츠키 유리는 모르더라도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녀와 그는 서로의 빛을 너무 잘 알고있으며 자신의 빛은 너무나도 몰랐기에 헤어졌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내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야. 분명 더 좋은 사람이 있을텐데? 분명 나보다 더 행복하게 해줄 사람이 있을텐데? 그렇다면 그 사람과 행복하게 반짝거리며 살았으면 좋겠다. 둘은 바보였고 악몽에서 깨어나는 방법을 몰랐다.

 

  “바보 카츠동. 너나 하나비나 미련한건 똑같다. 그렇게 그리워할꺼면 왜 헤어졌나.”

 

  유리 프리세츠키도 다른 선수들도 둘의 이별을 이해할 수 없었다. 카츠키 유리는 차가운 빙판 위에서 미끄러졌다. 점프를 뛰고 스텝을 밟았다. 생각이 많아질때마다 미끄러지던 버릇이 연습처럼 보였다. 복잡했다. 다시 만나고 싶지만에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건 아마 그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아침이었다. 눈을 떴을 때는 옆에 자신의 애인이 있었고 침대가 2인용이었다. 카츠키 유리는 오랜 악몽에서 깨어났다. 꿈이었다는 사실에 자신의 연인의 이마부터 시작해서 얼굴 이곳저곳에 입을 맞췄다. 평소같았으면 그가 할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할만큼의 높은 스킨쉽이었다. 카츠키 유리는 악몽을 이야기하지않기로 했다. 그녀만큼이나 그도 걱정끼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휴일이니깐 다시 좋은 꿈을 꾸도록 하자. 카츠키 유리는 그녀를 꼭 안고 기분좋은 꿈에 빠져들었다.

Editten By ITE(@Uruwashii_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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