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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는 끊임없이 재생됐던 그 악몽이, 그 기억이 영원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건 코우 자신이 만들어 낸 죄책감의 업보였다. 애초에 쉬이 잊을 수 없는 크나큰 고통이었다.

 산산이 부서져버린 검은 유리 파편 중에서, 유달리 크고 날이 서 있는 조각. 그날의 기억이 그러했다. 그녀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이들을 처음으로 떠나보냈던 그때.

 

 눈을 감으면 유난히도 고요했던 들판과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곤 했다. 잠이라도 청하게 되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모든 감각이 그날과 같아졌다. 그 시간에 갇혀있는 사람처럼.

 

 유난히 눈이 부시고 따뜻했던 아침의 온도, 같은 사소한 것 하나조차도 어렴풋해지지 않았다. 그렇게 순서대로 흘러가는 장면들은 기어이 마지막 모습까지 보여주고 나서야 그녀가 눈을 뜰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붉게 물든 꽃. 빨갛게 저물어 가는 석양. 끔찍하게도 아름다운 악몽의 마지막 풍경이었다.

 

 마침내 눈을 뜨면 느꼈던 수많은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어 온다. 숨이 턱 막혀오지만, 코우는 표정이 변하기는커녕 늘 그래온 듯 심호흡 몇 번으로 그 많은 것들을 갈무리한다.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탓이었다. 그리고 받아들여야 할 일이니까, 라고 항상 생각해 왔었다. 자신의 악몽임과 동시에 잊어서는 안 될 기억이었다. 줄곧 그리 생각해왔었다. 그를, 그리고 그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코우 자신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진실로 빛나는 곳으로 이끌어준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헤어나오기 어려웠던 것들을 허탈할 정도로 쉽게 털어내주었다. 특히 그가, 쿠니키다가 그렇게 해주었다.

 

 날카롭던 파편은 그의 부드러운 파도와 맞물려 서서히 부드러워져갔다. 어느 순간 코우는 죄책감이 들지 않게 됐다. 온전히 고통에서 벗어날 순 없었지만, 끌어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정도로 아물게 돼었다.

 

 그렇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일한 꿈이자 악몽은 그녀에게 안녕을 고했다. 무겁고 차기만 했던 밤이 지나치게 가벼워지고, 따뜻해졌다.

 

 그 후로 그녀에게 찾아오는 꿈은 아무것도 없었다. 좋은 꿈도 꿔본 적이 없었으나, 그녀는 충분히 행복했다. 아무 일 없는 매일 밤을 만끽하는 것만으로도 좋았으니까. 그의 옆에만 있을 수 있다면 말이야.

 

 

 

 

 

 

 

 

 

 

 

 

 

 

 오늘 꿈이 신기했어요.

 

 나오미가 찻잔을 어루만지며 느릿하게 말했다. 적당히 식어있는 복숭아티가 살짝 찰랑거렸다. 아키코는 그래? 라고 대꾸하며 찻주전자를 들어 나오미의 잔에 차를 조금 더 부어주었다.

 

 네. 그리고 드물게 좋은 꿈이라서요.

 

 일어났을 때 상쾌한 기분도 들더라고요.

 싱긋 웃는 표정이 부드러웠다. 코우는 쿄카에게 비스킷 하나를 건네준 뒤, 나오미에게 시선을 옮겼다. 꿈 얘기라니. 그녀에게는 다른 의미로 신선한 화제였다.

 

 그래? 무슨 꿈이었는데. 돈 들어오는 꿈?

 

 그런 꿈은 아니었지만, 뭐랄까…

 

 나오미는 아키코의 질문에 대꾸하며 자연스럽게 간밤에 꿨던 꿈 이야기를 시작했다. 달콤한 티가 나오고, 아름다운 장소가 나오고, 준이치로까지 나오는 이야기. 코우는 눈을 부러 여러 번 깜빡였다. 신기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그렇기에 재밌었다.

 

 나오미를 선두로 시작된 꿈에 대한 이야기들은 꼬리를 물고 제법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다들 이런 꿈을 꾸는구나. 코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고개를 숙이자 반쯤 남아있는 복숭아 티에 그녀 자신의 얼굴이 비쳐 보였다. 흐릿하게 일렁여서 표정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코우는 뭐, 재밌는 꿈 꾼 적 없어?

 

 아키코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들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재밌는 꿈. 그 전에 꿈이라고 해도. 찻잔을 그려 쥐고 있는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자꾸만 힘이 풀려 어색해질 것만 같은 입꼬리를 애써 다시 매끄럽게 끌어올렸다.

 

 글쎄요… 사실 제가 꿈을 잘 안 꾸는 편이어서!

 

 그래? 하긴, 사실 꾸지 않는 게 수면상으로 좋긴 해. 그런데 꽤 신기한데.

 

 코우라면 재밌는 꿈을 많이 꿨을거라고 생각 했는데.

 코우는 재밌다는 듯 작게 웃으며 나긋하게 대답했다. 파르페를 잔뜩 먹는 꿈 같은 건 한 번 정도 꾸고 싶어요. 그 말에 다들 기분 좋게 웃어보였다.

 

 사실이었다. 예전부터 그녀가 궁금해했던 얼마 안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허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악몽이 아닌 평범한 꿈을 꿨을 때의 느낌을 느껴보고 싶었다. 파르페가 아니어도 좋을 것 같아. 나쁜 꿈만 아니라면. 코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남아있던 차를 입에 머금었다.

 

 

 

 

 

 

 

 

 

 

 

 

 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쿠니키다는 욕실 불을 끄면서 방 건너편에 있을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일기를 쓰고 있던 코우는 그 목소리에 방문 옆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그를 바라보았다. 쿠니키다는 그 모습을 보고 귀엽다는 듯 픽 웃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특유의 무표정으로 코우에게 다가갔다.

 

 내일 일찍부터 할 일이 있는거죠!

 

 맞아. 급한 일이 들어왔다더군. 내일은 란포 씨와 사장님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곳으로 갈거다. 자세한 얘기는 내일 이동하면서 설명할 예정이야.

 

 쿠니키다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뒤, 그 투명한 머리칼을 매만졌다. 코우는 따뜻한 손길에 기분이 좋은 듯 방긋 웃었다. 그리고 그의 양 손으로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알겠어요. 오늘은 바로 자도록 노력해볼게요.

 

 노력해보는 게 아니라, 자야 해ㅡ.

 

 눈 감고 누워있어도 못 잘 때가 있잖아요! 물론 잘 거지만, 그래도 노력이 필요하다고요.

 

 쿠니키다는 못 말린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열려있던 방문을 반쯤 닫았다.

 

 잘 자.

 

 돗포 씨도 잘 자요!

 

 문이 완전히 닫히고 그의 발소리가 조금 멀어지더니, 바로 근처에 있던 방문을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 코우는 그 소리를 잠시 귀 기울여 듣다가, 바깥이 잠잠해지자 일기를 덮고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갔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이제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째깍, 거리는 소리만이 고요한 방을 채우고 있었고 코우는 그 소리를 멍하니 들으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급한 일이라. 드문 일도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큰 일인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인원이 투입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으니까.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응시했다.

 

 금방 해결되는 일이면 좋을 텐데.

 의미 없이 계속해서 눈을 깜빡이고만 있던 그녀는, 초침 소리가 아득해질 정도가 돼서야 눈을 감았다. 코우는 심호흡을 하듯 코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다시 내쉬었다. 그게 몇 번 정도 반복됐을까.

 

 바람에 풀이 스치는 소리가 저 너머에서 들려왔다.

 

 

 

 

 

 

 

 눈을 뜨자마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실 속이었다. 바람이 들어올 곳은 하나 없는데도, 화초들은 흔들리고 있었다.

 

 발밑 아래에서 익숙하고도 향긋한 향기가 올라왔다. 그제야 아래를 바라보니, 맨발 사이로 허브들이 가득 올라와 있었다. 로즈마리. 익숙한 허브였다.

 

 온실 전체는 꽤 작은 편이어서 그 안에 심겨져 있는 식물은 가짓수를 셀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서 그녀가 알 수 있는 사실들은 로즈마리 밭 한가운데에 자신이 서있다는 것과, 본 적 있는 나무 한 종류. 그리고 낯설지 않은 분홍색 꽃 무리가 있다는 것 정도였다.

 

 그녀는 발을 간질이는 로즈마리 밭에서 천천히 벗어나 벽돌이 깔려있는 바닥에 발을 디뎠다. 그와 동시에 오른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고, 또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돗포 씨.

 

 쿠니키다는 가끔씩 짓곤 하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로 코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모든 게 익숙한 것 같았다. 더없이 아름다운 배경,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는 상쾌한 내음. 좋은 느낌.

 

 코우는 쿠니키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운 거리에 그가 서있었다. 허나 다가갈 수는 없었다.

 

 뭔가 이상해.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주위 풍경은 그녀가 이동할때마다 변해갔는데, 쿠니키다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멀어지지는 않았으나 아무리 빨리 걸어봐도 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대체 왜, 라고 스스로 생각할 무렵에 바로 뒤쪽에서 손을 튕기는 소리가 들렸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보자 시야에 문고리가 들어왔다. 온실을 나가는 문 바로 앞에 그녀가 서 있었다.

 

 혹시나 하고 뒤를 돌아봤지만, 쿠니키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코우는 술렁이는 감정을 꾹 눌러담으며 새까만 색의 문고리를 계속 응시했다. 꺼림직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문고리 쪽으로 향하는 손을 멈출 수는 없었다.

 

 느릿하게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었다. 열자마자 보이는 건 왼편에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조금의 햇빛들. 그리고 수십 개의 기름통이었다. 텁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바깥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마자 어느새 코우는 자신이 셔터가 올라가 있는 폐창고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었다. 자꾸만 올라오는 다급한 마음에 폐창고 안으로 서둘러 뛰어 들어갔다. 폐창고 안에는 조금 전에 잠시 보았던 많은 기름통이 있었고, 그 사이로 상당히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사람들 위에는 상당히 낯익은 칼이 수십 개.

 

 아냐, 이럴 리 없어.

 코우는 뒷걸음질 쳤다. 도망치고 싶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한걸음, 한걸음.

 떨려오는 다리로 조금씩 창고 안을 벗어났다. 어쩐지 뒤를 돌 수가 없어서 여전히 뒷걸음질만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불러와야 해. 누구, 누구를 불러야 하지.

 

 코우는 머릿속에 곧장 떠오르는 그의 이름을 간절히 붙잡았다.

 돗포 씨.

 그의 이름을 속으로 외치자마자 복잡했던 머릿속이 명쾌해졌다. 어떻게든 알려야 해. 그 다짐 하나를 위해 여태껏 돌아보지 못했던 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돌아보자마자 보이는 건, 폐창고 셔터 바깥에 서있는 어떤 아이였다. 코우는 숨을 급하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얼마 가지않아 자신이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창고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바깥쪽에 서있는 아이는 역광 탓에 표정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다. 알 수 있는 건 쿄카 정도 되는 또래에, 금발의 머리칼이라는 것. 그리고 역광임에도 벽안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을 만큼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던 아이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서있었다. 코우는 멍하니 서서 아이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이상하게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몸은 본능을 따르는 듯 몸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위험해. 날 알아봤어. 그런데, 난 왜 위험한거지?

 

 아무 말 없이 코우를 응시하던 아이는 돌연 흥미롭다는 듯 작게 웃음을 흘려보냈다. 시선은 여전히 그녀를 향해 있었다. 코우는 그 시선이 자신의 숨통을 조여온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젠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때였다. 아이가 천천히 입을 열어 그녀에게 느릿하게 말을 뱉어냈다. 맑은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많이 컸구나.

 

 곧바로 이어지는 말은.

 

 조금만 기다리렴.

 

 대꾸할 새도 없이 바로 뒤에서 고통에 억눌린 듯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코우는 그제야 아이의 표정을 볼 수가 있었다. 마치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처럼 활짝 웃고 있는 모습. 그 모습에 소름이 끼쳐왔다. 억지로 시선을 외면하고는 괴로운 듯한 신음이 들리는 뒤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쪽에는.

 

 익숙한 뒤통수. 머리카락 색. 옷. 그리고 살짝 보이는 옆모습.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 돗포 씨야. 주위에는 검붉은 색 바닥이.

 

 아냐.

 

 안 돼.

 

 

 

 

 이럴 수 없어.

 

 

 

 

 

 

 

 

 

 

 눈이 잠시 파르르 떨리더니, 밝은 빛과 함께 익숙한 천장이 그녀의 시야에 보였다. 이마와 등이 축축했다. 현실이라는 걸 확인하려는 듯 눈을 여러 번 깜빡였다. 저 멀리서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들렸다. 방금. 방금 일어났던 건 그저 꿈이겠지. 급하게 숨을 들이 내쉬었다.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었다.

 

 지나치게 생생한 악몽이었다. 줄곧 시달려왔던 것과는 달랐다. 모르는 풍경, 모르는 아이.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꿈 속에.

 

 정신이 차려지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은 없었는데. 코우는 입술을 꼭 깨물며 지독했던 아까의 일을 곱씹어보았다. 그 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코우. 일어나.

 

 그녀는 그 목소리에 다급하게 일어나 방문을 활짝 열었다. 마침 들어가려고 했던 쿠니키다는 그녀가 급하게 문을 여는 바람에 어정쩡한 자세로 서있었다. 당황한 듯 잠시 입을 벌렸다가, 도로 닫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놀랬잖아.

 

 …아, 고의는 아니었어요! 전 그저…

 

 그는 말을 얼버무리는 코우의 모습에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확실히 그녀는 어딘가 불안해보였다. 설마 악몽을 다시 꾼 건가. 그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찌푸리고 있던 표정이 걱정스럽게 바뀌었다.

 

 …또 그 꿈을 꾼건가?

 

 그의 말에 코우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의 눈동자 안에 걱정스러워 보이는 그의 모습이 가득 담겼다.

 

 걱정끼치고 싶진 않아. 코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저 안좋은 꿈일 수도 있었다. 별다른 뜻이 없는, 그저 노파심에 꾸게 된 작은 악몽. 코우는 아무렇지 않은 체 하기로 결정한 듯 애매한 표정대신 항상 짓는 웃음을 머금으며 그의 말에 대답했다.

 

 아니, 아니에요! 그저…

 

 그저?

 

 잠이 덜 깨서 그랬어요! 이제 막 일어났거든요.

 

 …진짜로?

 

 그럼 진짜죠. 지인짜로 그 꿈은 안 꿨어요!

 

 거짓말은 아니니까.

 코우는 속으로 대꾸하며 싱긋 웃어 보였다. 쿠니키다는 몇 초간 더 그녀를 응시하더니,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면 됐어. 그럼 밥이 되는 동안 얼른 씻도록 해.

 

 코우는 대답 대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웃었다. 쿠니키다는 여전히 미심쩍은 듯한 눈치였으나, 별다른 말 없이 주방으로 걸어 나갔다.

 

 그녀는 곧장 욕실로 들어가 문을 조심스레 닫았다. 문을 잠그자마자 코우의 입에서는 큰 한숨이 새어 나왔다. 괜찮은 척 굴었으나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녀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려는 듯 괜찮다, 라는 말을 수십 번 되뇌였다. 너무 큰 의미를 두는 게 오히려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었다. 그냥 흘러넘기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리 생각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악몽은 악몽일 뿐이니까.

 

 코우는 치약을 칫솔 위에 듬뿍 올린 뒤, 세면대에 물을 틀고는 양치질을 시작했다. 안쪽에서 어렴풋이 올라오는 것만 같은 로즈마리 향기를 애써 외면하고서.

 

 속삭이는 듯 귓가에 들려오는 나긋한 목소리는 물소리와 함께 흘려보내 버리고.

Editten By ITE(@Uruwashii_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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