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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를 보고 싶었던 이유가 죽은 연인의 이름과 같아서는 아니었다. 굳이 이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원바다는 천하연의 곁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다.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니야. 겨우 움직이는 입으로 원바다가 귓가에 속삭였던 말은 잠시라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으면 들려왔고, 천하연이 가진 것은 모두 원바다가 남기고 간 것이기에 원바다는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아주 가끔이지만, 천하연은 자신이 원바다를 만나지 않았을 때의 미래를 생각하고는 했다. 마약도 돈도 범죄도 엮여있지 않고, 사랑이 목을 조여오지도 않을 그 삶은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그런 생각은 원바다를 향한 원망을 불러왔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줄 원바다는 이미 없었고, 천하연은 원망을 모아서 마음 한구석에 있는 원바다에 물어볼 뿐이었다. 우리가 아니면 누구의 잘못일까.

 천하연은 원바다를 만난 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을 수도 있었고, 다른 가족들을 팔아서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원바다를 따라갔다. 그건 선택이었다. 그러니 잘못 역시 우리의 것이라고 그렇게 말해야만 했었다. 이 모든 건 우리의 선택이었고, 지금의 추락도 죽음도 불행도 모두 그 결과일 뿐이라고 그렇게 말해야만 했다.

사랑하지 말 걸 그랬어. 원망과 후회는 천하연이 종종 내뱉는 그 말에나 겨우 붙어 나왔다.

 김주환은 굳이 그 말에 덧붙이지 않았다. 김주환은 천하연이 자신의 속을 드러내는 것이 그녀에게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 바다에 찾아온 사람은, 원망과 후회를 들어준 사람은 자신 이전에도 많다는 것은 모를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김주환은 이 여자에게 거리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되던 감정들은 모두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은 익히 알았고, 천하연이 그 감정의 일부라는 것을 김주환은 처음 만난 날부터 알아챘다. 굳이 잡으려고 애를 썼다가는 지금 가진 것들까지 잃어버리게 될 것을 잘 알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정말이지 우스운 일이었다. 사랑해. 하지만 정말이지 그리 말해야만 했다. 이건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놀란 눈도 아니었다. 익숙한 표정이었다. 어디선가 본 표정이었지만 한 번에 기억나지 않았다. 겨우 미친 사람 둘이 모여서 뭘 하려고. 형식적인 웃음과 함께 천하연이 물었다. 글쎄, 세상 모두를 우리처럼 만들까? 새어나오는 의미 없는 웃음을 겨우 막으며 김주환은 크게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어차피 고백은 사랑해달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사랑하게 된 것과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달랐다. 사랑을 할 정도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고백의 답이 돌아오지 않아도 김주환은 신경 쓰지 않았고, 천하연 역시 달라진 것 없이 대했다. 그래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사랑이 그렇게 통제가 가능한 감정이었다면 달마다 도망가다 죽는 거미들은 없었을 것이고, 그들과 함께하다 죽는 나방이나 개미도 없었을 것이다. 매번 본보기로 누군가의 죽음을 보여줘도 먹히는 법이 없었다. 그 사이에서 천하연은 자신의 감정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것이 도망갔던 이들이 변명처럼 내뱉던 구구절절한 사랑을 질리도록 들어서 인지, 아니면 이미 한 번 사랑에 미쳐있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천하연은 자신의 사랑이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 알았다.

 나는…, 천하연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네가 죽지 않기를 원했어. 천하연은 자신의 옆에 서있는 남자를 지금은 마주할 수 있었다. 눈을 긁고 지나간 흉터를 제대로 보는 것이 오랜만인 것 같았다. 예상치도 못했다는 놀람이 깃든 표정을 마주하는 것은 이외로 힘들지 않았다.

 그게 전부였어. 꿈이어도 하지 못하는 말이 있었다. 언제 찾아오든, 나는 너에게 말해주지 않을거야. 천하연은 이것을 악몽이라 불러야만 했다. 그래야만 네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Editten By ITE(@Uruwashii_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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