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24.png

 언제나의 ‘꿈’이었다. 어릴 적, 아직 미숙하던 날의 꿈. 믿을 사람이 전부 사라져 버린 날. 혼자 살아가기로 결심한 날.

 아직 어렸던 소녀는 그날의 참상을 계속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어린 소녀가 겪기엔 너무나 잔인했던 참상. 눈앞의 모든 것이 붉게 피어나던 그 순간. 그 사이에서 자신을 지켜보던 눈. 모든 것이 어제 일어난 일처럼 모두 생생했다.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상상을 더해 변질되어갔다. 그날 그 자리에 없었던 것들도 모두 원래 있었던 것처럼 나타났다. 그렇기에 꿈은 더욱 더 잔인해져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는 것이 아니었다. 더욱 더 선명하게 그녀를 옭아매었다.

 “아무도 구해주지 않아……. 구하러 와주지 않아…….”

 피는 양탄자처럼 바닥에 깔려있었다. 그 속에서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한 인영이 중얼거렸다. 슬픈 목소리였다. 얼굴엔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도 구하러 와주지 않았다.

 아니,

 구하러 와서는 안 된다.

 자신을 구하러 와서는 안 된다. 사실 알고 있다. 그렇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눈물을 흘린다.

 그렇기에,

 소녀는 오늘도 혼자서. 혼자서. 혼자. 혼자 그곳을 지킨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히 잠가놓은 채.

 어린소녀, 아니 이젠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 린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언제나 꾸는 악몽은 좀처럼 익숙해지질 않았다. 매일 매일 같은 꿈을 꾸다보니 자연스럽게 수면 시간도 부족했다. 피곤했는지 크게 하품을 했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해서 계속 집에 있을 수는 없었다. 혼자서 일어나 방문을 열어 걸어 나갔다. 사람이 혼자 사는 집치곤 넓은 편이었지만 나쁘진 않았다. 가끔 친구, 동료들이 놀러오기엔 딱 알맞은 크기였으니까.

 가만히 식탁에 앉아 차를 마셨다. 물은 미지근했다. 하지만 이편이 좋았다. 혀가 데일걱정은 없으니까. 창밖은 커튼이 쳐져있어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불투명한 커튼 사이로 보이는 느낌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어느새 다 비워버린 찻잔을 싱크대에 넣어두었다. 그리곤 언제나 그렇듯 밖에 나가기 위해 준비를 했다. 오늘은 꽤나 바쁜 하루가 될 예정이었다. 신경 쓰이는 일을 오늘 해결해버릴 참이었으니까. 물론 제 친구, 동료들은 모른다. 늘 그렇듯 혼자 독단적으로 처리하기위해서 아무런 언질조차 주지 않았다.

 “날씨도 나쁘지 않네.”

 커튼을 잠시 거둬 밖을 보았다. 구름과 햇빛은 알맞게 어우러져 있었다. 이런 날 혼자 아무렇지 않게 사라져 버려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아, 또 이상한 생각했네. 음……. 빨리 나가야겠다.”

 나무로 된 문의 끼익 거리는 소리는 제법 마음에 들었다. 턱. 하고 문이 완전히 닫혔다. 다시 이곳을 열게 될 일은 없을 것만 같은 소리였다. 굳게 닫혀버려서 부수지 않고서야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 같았다. 너무 세게 닫아 버린 걸까?

 “역시 피곤하네. 이러단 갑자기 길에서 잠들어도 이상하지 않겠는 걸”

 길을 걷는 내내 정신이 몽롱했다.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이정도 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그래도 이곳에 와서는 조금 괜찮아 졌다고 생각했건만 큰 오만이었다. 과거는 자신을 쉽게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저기서 잠시 쉬고 갈까?”

 나무 밑의 그늘은 지금의 그녀를 유혹하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가려던 길을 멈추고 나무 밑으로 걸어갔다. 나무의 그늘은 제법 기분이 좋았다. 나른한 느낌에 저절로 눈이 감겨왔다. 바람이 물어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는 좋은 자장가가 되어주었다.

 

 

 설마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스스로 닫아놓고 남이 부숴주길 바라는 거니? 정말 양심이 없구나? 그들이 너를 구해 줄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언제 그렇게 뻔뻔해진 거야? 예전엔 그렇지 않았잖아. 예전처럼 계속 혼자 있자. 믿을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걸 너는 잘 알고 있잖아.

 역시 그때 죽었어야했는데!

 “헉! ...하아……. 어라? 벌써 어두워졌잖아……. 왕도로 가야겠네. 약속한거니까 안 갈순 없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달이 보이지 않았다. 달이 없어서 일까 유독 쓸쓸하게만 느껴졌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상하네.

 왕도로 내려오니 다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당장 길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길을 걷다 말고 건물의 외벽에 몸을 기대었다. 눈앞이 흐릿했다.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반응 해줄 수가 없었다. 그 소리는 점점 멀어져갔고, 눈앞의 풍경도 점점 막을 내리고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다급한 어린 목소리만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익숙한 꿈이었다. 당장에 오늘 아침에도 꾸었다. 작은 집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살기엔 충분한 크기의 집이었다. 앞엔 부모님이 있다. 언니도 있다. 원래 있었던가? 그 의문은 접어 휴지통으로 버렸다.

 모두가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응, 정말 즐겁게! 하지만 곧 모든 것이 붉게 물들었다. 노을이 아니었다. 노을빛보다 더 진한 붉은 빛이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담기엔 너무나 선명했다.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은 붉은 빛. 누군가 눈을 가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 모든 ‘빛’은 어린아이의 눈에 오롯이 담겨버렸다. 그대로 눈에 낙인이 찍혀버렸다. 지울 수 없는 끔찍한 낙인이었다.

 “아직도 누군가 구해주길 바라는 거야?”

 응.

 “미련하구나. 여전히. 아무도 못 오게 막아놓은 것은 너였잖아.”

 아니야.

 “맞아.”

 나가고 싶어.

 “어머, 나가고 싶어? 못나가. 넌 아직 죗값을 다 치르지 않았잖아.”

 내 죄가 아닌데…….

 “너 정말 이기적이구나. 하지만 여길 닫은 건 너잖아. 그래놓곤 이제 나가고 싶다고? 역시 어린아이 같은 발상이야.”

 그때였다.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서 들리는 소리지?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빛이 보였다. 아주 가느다란 빛이였다. 옷에서 풀려버린 실밥같이 가느다란 빛을 따라서 계속 걸었다. 그러자 작은 문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 문틈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거기 있어?”

 ……응.

 “다행이다.”

 뭐가?

 “음, 네가 거기에 있어서?”

 그렇구나……. 그런데 왜 왔어? 어떻게 왔어?

 “그렇게 물으면 대답하기 애매한데……. 와보니 여기였어. 그리고 당연히 널 구하기 위해 온게 당연하잖아.”

 바보 같아.

 “……상관없어. 기억나? 약속한거.”

 …….

 “어디에 있든 구하러 간다고 했잖아. 설마 잊은 거야? 아니면 날 믿지 않았어?”

 그, 그런 거 아니야. 하지만……. 이건 나만의 문제잖아. 네가 여기 있는 것도 이상해!

 “상관없다니까. 너와 관련 있는 거라면 나와도 상관있어.”

 넌 언제나 자상하구나.

 “너라서 그런 거야. 어때 이제 거기서 나오지 않을래?”

 어? 나는 나가는 방법 몰라.

 “음,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

 손을 뻗어 문손잡이를 잡았다. 밀면 열릴까? 손에 힘을 주어 있는 힘껏 문을 밀었다. 생각보다 쉽게 문이 밀려났다. 아! 더욱 커다란 빛이 자신을 향해 내리쬐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밖은 이렇게나 밝았구나.

 “나올 수 있잖아. 그렇지?”

 응. 그러네.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손의 따스한 온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상하네. 여긴 꿈일 텐데 왜 이렇게 잘 느껴지는 걸까.

 “이제 다신 여기로 오지 마. 너의 빛을 따라서 계속 앞으로 걸어가라구.”

 눈을 떴을 때 이곳이 어디인지는 확실히 알 수 가 있었다. 성의 의무실이었다. 익숙한 천장은 확신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손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 이래서…….”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사람을 계속 지켜봤다. 정말 내 꿈속에 찾아온 걸까? 신기하네. 한참을 얼굴을 보고 있으니 눈을 뜬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일어났구나. 여기서 이렇게 자고 있어도 되는 거야?”

 “……너, 내가 얼마나 걱정을……. 그래 멀쩡하면 됐어.”

 “미안……. 아, 맞아 란슬롯 너 내 꿈에 나왔었어.”

 “그래? 신기하네. 나도 네가 나왔는데. 음 모습은 조금 어렸지만.”

 “……그렇구나. 응, 정말 신기하다.”

 “린.. 정말 괜찮은 거지?”

 “응. 우리 기사 단장님 덕분에 아주 멀쩡하답니다.”

 작게 웃어보았다. 란슬롯은 그런 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린은 놀랐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녀도 그를 안아주었다. 사람의 온기는 아주 따스해서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

 정말 고마워. 나를 구해줘서. 네가 나의 빛이었구나.

 어린 날의 악몽은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나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끝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이제 두렵지 않았다. 혼자 있지 않았다. 문을 닫아두지 않았다.

Editten By ITE(@Uruwashii_girl)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