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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그 사랑이 뭐라고, 네가 바라는 사랑이 뭐길래, 네가 하는 사랑은 그저 겉만 아름다울 뿐인..

 그렇게 ‘사랑’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던 하니카미 코코아, 너는 이제 없다. 너는 그 날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했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내 방식을 받아들이고, 체념한 듯 더 이상 인간이나 할 법한 평범한 사랑 따위를 입에 올리는 일은 없었다. 네가 그 사랑을 입에 담는 건 끝끝내 자신이 이브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하지만 그 모습조차도 점차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어딘가, 나를 놀리는 것만 같아 우스워서. 네가 이 모든 것을 연기했던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도, 나중에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랑의 결말은 ‘이것’이라며 날 떠나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이 이번에도 찾아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도 모두 우습고 불쾌하고 괴로웠다.

 당연하게도 불안 가득한 정신머리가 나약해진 몸을 그대로 놔둘 리가 없었다.

 ──또 다시 악몽에 시달리게 됐다는 말이다.

 루키는 불안함에 사로잡힌 후부터 반복하여 꾸는 악몽에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생각하는 자신의 나쁜 버릇과 죽지 않는 몸이라 죽음으로 이 상황에서 도피할 수 없게된 것이 악몽을 꾸기 좋은 최적의 조건이라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불안함이 대체 뭐라고 이렇게까지 비좁은 머릿속을 차고 들어오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뇌시키면 될 일이고 떠나갈까 두렵다면 떠나지 못하도록 구속하면 될 일일텐데. 하지만 그것은 어렴풋이 그래서는 안된다는 자신의 확고한 대답에 번번이 보류해뒀던 방식이었다.

 “그래서는... 안된다...?”

 루키는 그 확고한 대답에도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이 생각의 꼬리가 이어질건지. 이 정도면 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억지로 잠에 빠져들었다.

 어김없이 그 악몽을 꾼다. 꿈의 시작은 언제나 이상하리만큼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그리고 그토록 입에 다시 꺼내기도 싫었던 사랑, 불안함의 주된 원인인 불안정한 사랑, 지독한 사랑의 색으로 온통 채워져 있었다. 이 지독한 꿈에 물들고 싶지 않아서 내 곁에 당연하다는 듯 앉아있는 너에게 손을 뻗어 꿈일텐데도 생생한 체온을 느끼고 안으며 체향을 맡았다. 그리고 뱀파이어에게는 사랑의 증거라 볼 수 있는 흡혈행위, 그 흡혈행위에 없어서는 안 될 피를 빨아들이며 네가 바라는 사랑은 네 안에 분명 존재한다고 각인시켜주듯 송곳니로 하얀 피부에 자국을 새겨나갔다. 송곳니가 지나간 자리에는 피가 방울방울 맺혀 피부를 따라 흐르고 불안함을 해소해주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흐르던 피는 말라비틀어지고 가루가 되어 자신의 미약한 숨결에도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놀란 눈빛으로 널 바라보는 나를, 너는 그럴 줄 알았다는, 그러는 것이 마땅하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다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난 나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사랑, 즉 피가 말라가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해 한참을 넋이 나간 듯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루키는 코코아가 꿈에서 처음에는 자신을 받아들이면서도 마지막에는 항상 그럴 줄 알았다고 바라보는 눈빛이 매우 불쾌해서, 그리고 무언가를 알고 있는 눈빛을 하면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아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또 늘 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내라는 것일까.

 

 그러다 ‘이브’인 네게 가지고 있었던 불만들이 참지 못하고 터져나왔다.

처음부터 너는 나의 부름에도 끝끝내 응하지 않았고, ‘아담’을 사랑하려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이브’라는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않았고 평범한 사랑을 바랐어. 네가 이브임에 틀림없는데 마치 이브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말을 하고...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 분의 개입 없이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이 몹시 싫었는데...!

아무도 없는 자신의 방에서 울분을 토하듯 중얼거리다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을 곱씹었다.

 ──그 분의 개입 없이.

 

 루키는 천천히 침착하게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코모리 유이’가 ‘이브’였을 때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지 않았고, 자신이 바란다면 세뇌하고 속박하는 일에 서슴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자연스러운 사랑을 인위적으로 뒤튼 것이 틀림없었을 텐데도 유이는 그에 응해왔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코모리 유이는 그 분의 개입으로 인위적으로 이브가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그 어떤 인위적인 방식이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하니카미 코코아, 지금의 이브는 이 세계의 신이나 다름없는 그 분의 개입 없이 자연스레 태어난 이브. 그렇기에 신 조차도 예측할 수 없고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는 지금까지 없던 유일무이한 존재.

 

 “그런 존재의 사랑을 억지로 얻으려고 했다는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너는, 처음부터 말하고 있었던 건가..?”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생각할 때마다 드는 의문들의 대한 답을 알아내버려서 혼란스럽고 허탈한 기분이 드는 것도 잠시 루키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토록 괴로워했던 악몽과 마주하기로 마음먹는다.

 

 지독하고 말라 비틀어져 조금의 진동에도 바스러진 사랑, 피. 그런 사랑. 루키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모아 담았다. 미약한 숨결에도 이 사랑은 저 멀리 사라져버리겠지.

 한 번 흐르기 시작해 지상으로 떨어진 것 모두는 서서히 사라진다. 지금 내 손에서 방울방울 맺혀 떨어지는 피 또한, 사랑의 증명 또한.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을 말없이 바라본다. 조급함을 가지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자신의 손 안에 온전히 그 사랑이 담겨질 것을 기다리며.

Editten By ITE(@Uruwashii_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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