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끝나고, 그 전투가 끝나고 일이년 정도가 지났다. 세계는 서서히 일상을 되찾고 있었다. 그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나조차도. 같이 살고 있던 아파트는 전투가 일어나기 전과 다름이 없다. 두 개의 칫솔, 두 개의 접시들, 두 개의 베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너의 흔적은 내 일상에 아직도 남아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없애지 않았다. 아니, 없애지 못했다고 해야하는 걸까. 나는 아직도 너와의 기억이 남아있는 물건들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일상을 되찾아가며 회복을 하고 있는 가운데, 나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런 모습. 나만이 그 때, 그 순간에 멈춰있는 것이었다. 네 기억을 내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는다면 미래의 두려움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철부지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런 것일까, 하며 가끔 해가 지는 창문 옆에서 너와 함께 산 머그컵에 밀크티를 따라 마시며 생각하곤 했다. 생각을 몇날며칠을 해도 결론에 다다르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답을 찾으려는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지 그 생각은 네 웃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였으니까.
아, 프레드 위즐리. 너는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었다. 네가 있는 곳은 언제나 웃음과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던 곳. 그리고 너는 그것의 중심. 나는 그것을 언제나 나의 자랑으로 여겼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자리에 우뚝 서있는다는 것은 내 가장 큰 기쁨이었다. 아,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 때로 돌아가 이 순간이 오지 않게 시간을 멈춘다면.
그 일이 있은 후로 매일 꿈을 꾸게 되었다. 꿈은 아니지. 눈이 감기는 동시에 내 눈 앞에서 그 날의 일들이 다시 그려지는 것이니까. 내 왼쪽 뺨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숨이 가파오고 있었다. 너를 찾으려 온 학교를 돌아다녔다. 학교에 있을 때만 해도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 움직이던 계단들이 그토록이나 원망스러울 줄은. 몸은 점점 떨려오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 모든 교실을 둘러보아도 너는 없었다. 7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마지막 계단에서 나는 초록색 섬광과 함께 네 비명소리를 들었다. 네게서 한번도 들을 것이라 생각해본 적없는 그 소리를. 나는 서둘러 네게 뛰어갔다.
내가 도착했을 즈음, 너는 힘겨운 듯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서둘러 너를 내 품에 안았고, 너는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팔을 들어올려 내 뺨을 어루만졌다. 언제나 느끼던 손길이었지만 그 때만큼은 달랐다. 언제나 온기로 가득했던 네 손은 손가락 끝에서부터 차가워지고 있었다.
사랑해.
그것이 네 마지막 말이었다. 너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었다. 내 모든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간 느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 순간이 내게 다가왔다. 사방에서 주문소리가 들려오고 그것이 나를 다시 현실로 돌려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귀는 멍멍했고 시야는 흐릿했다. 그렇게 나는 쓰러졌다.. 꿈 속의 내가 깨어나 보이는 것은 어느 소리도 나오지 않은 채로 흐느끼는 조지와 바닥에 누워있는 너를 한없이 쓰다듬으며 울고있는 론의 모습이었다. 나는 네게 절뚝이며 다가가고, 그것을 본 조지는 나를 저지했다. 내 시야는 흐려지고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내게 돌아와, 프레디.
조지는 내 뒤로 다가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네가 살아나길 바랐는데. 다 늦게 도착한 내 잘못이었다. 내가 조금만 빨랐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꿈을 꾸고 나면 식은 땀에 젖어 우리가 함께 쓰던 침대의 한 가운데에서 숨을 헉헉 내쉬며 일어난다. 숨을 고르기까지의 시간은 약 10분. 그리고선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쉽게 오는 것은 아니다. 네 마지막 모습을 보았으니 더더욱이나. 뒤척이다 결국 잠이 오지 않는 날은 일어나 거실로 향한다. 우유를 데워 허니듀크의 핫 초콜릿가루를 섞는다. 네가 좋아하던 것이었다. 우리가 처음 호그스미드에 갔을 때 마셔보고선 잔뜩 신이 나 1갈레온으로 살 수 있었던 양을 전부 사버린 너와 곧 네가 질려할 것이라고 장담하던 조지. 하지만 조지의 예상은 빗나갔고, 너는 곧 너만의 레시피를 개발해 그것마저 팔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네 사업수완은 알아줬어야했는데. 네가 나에게만 무료로 가르쳐준다며 마법의 약 교과서에 넣어준 꼬깃꼬깃 접어둔 작은 양피지는 언젠가부터 나의 부적같은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몇년 뒤에 그 사실을 안 너는 내게 그런 감성도 있었냐며 호탕하게 웃었지만.
핫 초콜릿을 한 모금 마시고 런던의 야경을 바라본다. 런던은 네가 사라지기 전과 다른 점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분주히 움직이는 도시였고, 여전히 아름답기 그지없는 도시였다.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는 와중에도 너의 시간은, 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은 네가 쓰러진 그 시간에 멈춰버렸다. 실상 꿈은 내가 널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이 악몽을 계속해서 꾸는 것이 아닐까. 네가 돌아오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