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몽
W. 카에나
다자이 오사무 × 타테야마 카에나
이 모든 것은 꿈이어야 한다. 반드시. 꿈이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은 설명 할 수 없다. 눈 앞에서 그녀가 죽어가다니, 설마 아닐 것이다. 아닐 것이고, 아니어야한다. 사라지지 않도록, 죽지 않도록 반드시 지키겠다고 늘 스스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건만.
악몽이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것은 눈 앞에서 벌어진 일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맞은 편에 있던 그녀가 파란불로 변한 횡단보도를 건너려 몇발자국 걸어나가자, 신호를 보지못한 운전자가 그녀를 빠른 속도로 치고, 그 자리에서 충격으로 기절한 듯 싶었다. 사람들의 술렁거림에 속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겠지. 설마. 설마! 그녀를 급히 안아올렸지만 쌔액쌔액하는 숨소리와 함께 그녀의 입에서 붉은 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액체가 쏟아져나왔다. 아아. 지금껏 과거에 몇번이나 사람을 죽이면서 봐왔던 붉은 색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녀의 붉은 색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전혀 예상 밖이었다.
죽지마. 애달픈 목소리로 내뱉었지만, 그녀에게 들렸을지는 의문이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죽지마. 제발 나만 놔두고 가지마. 가지말게. 제발. 오열하면서 그녀를 끌어안으면 점점 온기가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데자뷰가 느껴졌다. 오다사쿠. 나는 또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네. 그녀가 나를, 내가 그녀를 떠나보내고 말았어. 내 탓이야. 내가 그녀를 사랑한 탓이네. 눈 앞이 흐려지면서 찢어질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천천히 제게서 떠나가는 그녀를 붙잡고 세상 그 누구보다 서럽게 눈물을 흘려보냈다.
" 미안, 미안하네. 내가.. 내가! 내가 자네를.. "
내가 자네를 사랑한 탓이야. 그 벌이라면 내가 몇번이라도 달게 받을터이니, 제발 내 눈 앞에서 사라지지마. 날 떠나지마.
눈 앞이 새까맣게 변하고 세상이 어두워졌다.
***
" .. 나. "
그리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라, 어젯밤 자살시도를 한 것이 성공으로 이끌린걸까? 제 품에 없을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여지는 것 같았다. 아아, 신이시여. 그대는 어찌 이리도 잔혹하시나이까. 제게서 한 사람도 모자라, 두번째까지 데려가셔놓고 이런 고문을 하시다니. 차라리 저를 그녀의 품이 아니라도, 멀리서라도 볼 수 있도록 그 어떤 고문이라도 받을터이니.. 그녀를 볼 수 있게만 해주소서.
" 언제 일어날거에요? " 아아, 꿈 속이라도 자네의 목소리는 여전히 아름답구나. 기억속에서 가장 빨리 잊혀지는 것이 사람의 목소리라고 하던데, 나는 기억속에서 조차, 자네의 목소리를 잊지 않을정도로 너무나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던걸까.
" ... 일어나요. 아저씨. " 천국이구나, 분명 지옥에 떨어질거라 생각했는데. 지옥에서라도 자네를 볼 수 있다면 다행이라 생각하며 삶에 대한 미련을 버릴 작정이었건만, 함께 천국에 있다니. 내 인생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것이었던가? 입가에 미소가 절로 그려지는 것 같았다. 몸이 나른하고, 평소보다 오래자고 일어난 것 같은 기분에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꿈 같은 광경이었다. 분명 이곳은 자네와 함께 살기로 결정한 후에 구한 집일 터인데, 어찌 이곳에 아직도 내가 있는 것이며, 어찌 자네가 이곳에 나와 함께 자고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자네는 나를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일까.
" 일어나라고 제가 4번째 말하고 있잖아요. "
아얏, 이제는 발로 차이기까지 하다니.. 자네가 언젠가 츄야에게 다자이는 발로 차도 되는 녀석이라고 하자마자, 나를 발로 차버린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 같았다. 아아, 그때의 자네조차도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데, 이렇게 만날 수 있게되다니. 기쁜 마음으로 그녀의 볼에 손을 올려 쓰다듬으면, 흠칫 놀란 그녀가 손을 쳐내고 억지로 제 어깨를 잡아 일으켜세웠다.
어라, 꿈.. 도 아니고. 그렇다고 천국 같은 기분도 아니었다. 어라, 아픈 느낌은 천국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나? 점점 더 꾸우욱 눌려져오는 어깨에 표정을 구기면서 눈을 완전히 뜨고 앞에 있는 그녀를 바라보면 일그러진 표정으로 당장 일어나라며 조용히 말하는 그녀가 있었다.
당황스러움 보다는 다시 만났다는 것에 먼저 기쁨과 놀람을 느끼고 한껏 품에 가둬 안아버렸다. 온기가 있었고, 심장도 분명하게 뛰고 있었다. 무엇보다 목소리가, 변함없이 곱고 아름다운 선명한 음색을 띄고 있었다. 아아, 자네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한껏 다시 만났다는 생각에 여러가지 감정이 교차하고, 벅차올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네.
" .. 아저씨, 울어요? "
" .. 자네가, 내 품에서 죽는 꿈을 꾸었어. "
울먹이며 말하는 소리가 그녀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는지,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녀가 저를 꼭 안아서 등을 토닥여주기 시작했다. 아저씨가 그렇게 절 사랑할 줄은 몰랐네요. 픽 웃는 소리가 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굉장히 한심하다는 듯한 어조로 그녀가 읊조렸다. 아아, 맞아. 굉장히 한심하지? 하지만, 나는 자네가 없는 세상을 꿈일 뿐이라도 느껴보았고, 확실히 허전함과 공허함을 느끼고 돌아왔지. 아마 신께서는 내게 마지막으로 내려준 삶인 것이니, 소중하게 여기라는 경고가 아니었을까 싶네.
이제 일어나서 밥 먹어요. 여전히 한숨을 내쉬면서 머리를 쓰담아주는 그녀에게 기대어 품에서 부비적거리면 간지럽다며 작게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아아, 자네가 살아있는 이곳은 내게 현실이고 천국이야.
이 천국에서 벗어나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던가. 자네가 없는 세상 따위는 더이상 살 가치도 없다는 것을 내가 깨닫고 말았어. 카에나 양. 자네가 없는 세상은 악몽 그 자체야.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고, 자네 역시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이젠 확실히 해야할 때가 온 것 같네. 자네가 살아 숨쉬는 이 순간마다, 아니.. 나와 함께 숨쉬며 살아갈 평생동안.
" ... 나와 결혼해주겠는가? "
자네가 없는 악몽은 더이상 거닐고 싶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