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은혼 '해결사여 영원하라' 날조가 심각합니다.
2.
시점은 사카타 긴토키가 과거를 바꾸기 전 입니다.
3.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은 원작 인물이 등장합니다.
4.
등장인물의 사망 소재가 있습니다.
***
노부메. 내가 죽으면 이곳에 남는 건 뭘까. 코이즈미 카오루가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죽은 뒤에 남는 것. 그 정말 무거운 것들을 생각하며 이마이 노부메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코이즈미 카오루는 소리 없이 웃으며 이마이 노부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릎에서 흩어지는 머리에 습기가 느껴졌다. 이마이. 내가 죽으면 내 물건 같은 건 남겨두지 마. 왜 그 사람의 물건을 보면 보고 싶고 그렇잖아. 솔직히 나는 죽음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야. 남들은 이상하다고 하는데 적어도 나는 그래. 너를 만난 뒤로는 죽은 나를 네가 기억할까 봐 무서워. 죽은 내가 너에게 남아버릴까 봐. 그래서 네가 날 기억하면서 아파할까 봐.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알았다고 해줘. 너도 알잖아. 나는 네가 아픈 걸 견딜 수가 없거든. 이마이 노부메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그런 소리를 하는 이유가 뭐야? 네가 죽을 리 없잖아. 틀림없이 불행한 이마이 노부메는 코이즈미 카오루의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웅얼거렸지만, 그때 이마이 노부메가 고대하던 대답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 어느 날에 코이즈미 카오루는 무슨 표정을 지었더라. 이마이 노부메는 구태여 기억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지 말라고 했으니까. 코이즈미 카오루가 기억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그해의 여름은 유난히 길었고, 이마이 노부메는 때아닌 열병을 앓았다.
에도의 긴 여름은 백저에 굴하지 않고 찾아왔다. 열어 재낀 후스마 뒤로 보이는 아스팔트 위의 풍경은, 어느 가난한 화가의 초상화마냥 일그러진 모양새였다. 코이즈미 카오루가 사랑하던 에도에 이마이 노부메만 머물렀다. 그러면 여전히 그녀와 함께하는 것만 같았다. 백저는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었고,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천 명씩 죽어나갔다. 모든 거리, 모든 골목마다 시취가 진동했다. 여름이었다. 미처 치우지 못한 시체는 길거리에 널려 있었고, 그 찜찜함이 공포로 변하기도 전에 시체들은 썩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서로가 처음이었음에도 모두의 손을 붙들고 기도했다.
살아 있는데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시체가 쌓인 거리에서 저만은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 멸망한 에도에 이마이 노부메는 살아남았다.
이마이 노부메는 매일 코이즈미 카오루의 흔적을 지워나갔다. 어제는 그녀의 옷을 태웠고, 오늘은 방을 정리했다. 틀림없이 불행한 이마이 노부메는 아직도 코이즈미 카오루를 기억하고 있었다. 이마이 노부메가 기억해서, 이제는 너무 무거워진 코이즈미 카오루가 밤마다 행차하셨다. 단발머리를 한 코이즈미 카오루, 푸른 기모노 차림의 코이즈미 카오루, 어느새 길게 자란 머리를 틀어올린 코이즈미 카오루, 저와 비슷한 옷을 맞춰입은 코이즈미 카오루,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코이즈미 카오루같은 것들이 이마이 노부메에게 훈수 질을 두었다. 그러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 따위는 이마이 노부메에게 상관이 없었다. 사실 이마이 노부메는 코이즈미 카오루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지? 사랑하는데 어떻게 지울 수 있지? 어떻게 남지 않을 수 있는 거야. 그 시간이, 그 사랑이 너는.
그렇다면, 그걸 지울 수 있다면 그건 사랑이 아닌 거다. 이마이 노부메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래야만 코이즈미 카오루가 죽은 방에서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틀림없이 불행한 이마이 노부메는 잘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살아 있을 때와 똑같은 코이즈미 카오루에게선 희미하게 향 냄새가 났다. 분명히 죽었을 텐데, 어쩌면 누군가가 되돌려서 살아 돌아온 것마냥 혈색 좋은 얼굴을 본 이마이 노부메는 그만 죽고 싶어졌다. 살아 돌아온 것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슬퍼 보일 수 있을까. 이마이 노부메는 코이즈미 카오루의 모든 것을 기억했다. 그래서 그 슬픈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잊지 않는 대신 이마이 노부메는 잠을 잤다. 코이즈미 카오루를 잊지 못한 이마이 노부메는 코이즈미 카오루가 없는, 습한 바람이 부는 그 계절을 자는 것으로 보냈다. 꿈속에서 코이즈미 카오루 화를 내며 얼굴을 붉혔지만 이마이 노부메는 코이즈미 카오루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행복해했다.
코이즈미 카오루가 없고, 이마이 노부메가 잠을 자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다.
이마이 노부메가 살아남았던 계절은 여름이었다. 그 계절에 꼭 누군가가 돌아올 것 같았던, 그 생각을 부정하지 않은 이마이 노부메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마이 노부메는 또한 그 여름이 코이즈미 카오루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인정하는 건 이마이 노부메가 코이즈미 카오루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마이 노부메는 코이즈미 카오루를 인정했다. 더이상 코이즈미 카오루를 잊는 것도 힘들고 그 남은 것을 들쳐메는 것도 힘들었던 이마이 노부메는 너무 지쳐있는 것 같았다.
지친 이마이 노부메는 시간이 흐르도록 두었다. 계절이 바뀌면, 이 무거운 연인의 꿈이 어떤 식으로든 해결될 것 같았다. 이마이 노부메는 죽어버린 듯이 잠을 자면서 떠올렸다. 제가 그녀에게 건넸어야 할 단어들을, 그 덩어리진 사랑과 그녀가 제게 건넸던 사랑의 속삭임을, 사랑을 나누던 그녀와 자신을. 이마이 노부메는 후회했다. 잊지 못한 것과 잊을 것들을, 하지 못한 것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그렇게 계절의 끝과 시작이 반복될 때 사람들은 흐느꼈다. 죽여주세요. 차라리 죽여주세요. 제발 저를 좀 죽여주세요. 죽여주세요.
이마이 노부메는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므로 이마이 노부메는 편안한 안식에 들 수 있었다.
노부메. 내가 죽으면 이곳에 남는 건 뭘까. 어느 날에 코이즈미 카오루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그녀를 틀림없이 행복할 이마이 노부메는 기억했다. 죽은 뒤에 남는 것. 그 정말 무거운 것들을 생각하며 이마이 노부메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네가 죽으면…. 여름이 남아. 코이즈미 카오루는 소리 없이 웃으며 이마이 노부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릎에서 흩어지는 머리에 습기가 느껴졌다. 그래, 나는 너의 여름이구나. 그러면 너는, 매년 여름이 오면 날 떠올리겠구나.
사카타 긴토키가 모두를 위하여 과거를 바꾸기 전에, 그런 계절이 있었다. 어쩌다 한 번 지나가는 악몽 같은 계절이 이마이 노부메에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