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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시란.png

 듄의 꿈에 시란이 나오는 일은 잦았다. 잠을 자는 일은 한 달에 스무 번 정도였고, 열아홉 번은 시란이 나왔다. 꿈속의 시란은 늘 달라서, 어느 날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울고 있었고 다른 날은 사랑하던 때와 같이 웃었고, 또 다른 어느 날은 듄이 마주볼 수 없었다.

 굳은 피와 일그러진 얼굴을 듄은 한 순간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입을 열기가 힘들었다. 내가, 입을 열며 고개를 들었을 때의 시란은 이미 눈앞에서 사라져있었고 듄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듄은 특정한 어느 날을 두고 악몽이라 칭할 수 없었다. 모든 꿈이 악몽이었고, 동시에 그리움이었고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그걸 두고 산은 참 악질적인 취미라고 혀를 찼다.

 “괴로워하는 거 보는 게 재밌어요?”

 “누가 괴로워하는데?”

 “누구겠어요, 누나 짝사랑 상대지.”

 “괴로워한다니, 사랑하는 사이에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뭔 미친 소리야. 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안 그래도 카페인 중독에 불면증 있는 것 같은 사람이 잠만 자면 그 꿈에 들어가서 깨우면서, 이보다 악질적인 괴롭힘도 없을 거라고 산은 생각했다. 겉보기에나 멀쩡한 거지, 보스나 레이디나 누나나 산의 눈에는 거기서 거기였다.

 스푼은 그래도 시란을 상식은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모양이었지만, 산의 눈에는 아니었다. 시란은 정신적인 부분에서는 누구보다 어렸다. 사람에게 매달리기 좋아하고, 죽음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상식 바깥의 행동을 하는 일이 잦았고, 장난은 장난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시란에게는 이것도 장난에 불과했다. 사랑을 앞세워서 상대의 꿈에 매일같이 나타나서 자신을 잊는 일이 없게 만들었다.

 “나는 듄이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

 “못 잊을걸요.”

 “아니, 잊어.”

 보기 드물게 확신을 담아 시란이 말했다.

 “사람은 너무나도 쉽게 잊어. 듄이 더 이상 히어로업계에 종사하지 않거나, 내가 계속 듄의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듄의 인생에서 나는 얼마 안 가 사라질 거야.

그러니까 나는 가능한 내가 살아있는 동안, 듄의 기억에 남고 싶어. 그 사람의 가장 큰 행복이 나였으면 좋겠고, 가장 큰 불행도 나였으면 좋겠어.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의 모든 곳에 내가 스며들어있어야만 해.”

 저 말을 부정해야한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과연 잊지 않을까. 내가 죽는다면, 내가 사라진다면, 정말로 내가 그러는 것처럼 그 사람도 나를 잊지 않을까. 산은 확신할 수 없었다. 짜증나. 결론이 난 생각이었다.

 “어차피 나는 내가 더 오래 살 수밖에 없어서 괜찮아요.”

 “하긴, 너는 한참 어리지.”

 그것 때문에 차였지만. 시란은 굳이 뒷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리다고 차여 와서는 펑펑 울던 산을 달래면서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고생했던지, 시란은 새삼 다시 그 때를 떠올리고는 웃었다.

Editten By ITE(@Uruwashii_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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