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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카리는 오늘도 같은 꿈을 꿨다. 안개가 깔린 조용한 공원, 그곳은 이제 익숙한 느낌만 남아있었다. 히카리는 여느 때처럼 안개를 걷으며 공원 중앙에 있는 분수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리를 만나기 위해서.

 

 “오늘은 일찍 왔네?”

 “익숙해졌으니까 당연하지.”

 “정말 히카리다운 대답을 하네. 그래도 조심해. 악몽에서 길을 잃으면 깨어날 수 없으니까!”

 널 만날 수 있으면 괜찮아. 히카리가 아이리의 말에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다. 힘이 빠진 웃음이었지만, 담긴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의 몸과 정신을 깎아 먹는 악몽 속에서밖에 만나지 못하는 아이리지만, 딱히 원망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가자, 여기서.”

 “…아, 응! 그래. 나가야지.”

 

 히카리는 아이리의 손을 잡았다. 이전처럼 따뜻한 손은 아니지만, 부드럽고 안정되는 느낌은 여전했다. 히카리가 공원의 입구까지 도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여러 번 반복한 일이었으니까.

 

 “돌아가자. 다른 애들도 기다리고 있어.”

 “…….”

 

 히카리가 아이리의 손을 붙잡고 공원 밖으로 이끌자, 아이리의 몸은 그림자가 되어 손에서 녹아내렸다. 역시 나갈 수 없구나. 히카리는 손에 남아있는 감촉을 되새겼다. 아이리가 공원에서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히카리는 천천히 눈을 떠, 제 방의 천장을 마주했다. 아이리를 더 오래 만나고 싶었다. 이전처럼 같이 여행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도, 아이리와. 아니 모두와 웃으며 다시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소원은 7년째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히카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꿈에서 깨고 난 뒤, 오른손에 남아있는 냉기뿐이었다.

 

 

 히카리가 하루를 보내는 이유는 하나였다. 밤에 잠이 들면, 꿈에서 아이리를 만날 수 있다는 것. 아침이 와서 잠에서 깨더라도, 자신의 몸을 갉아 먹는 악몽이라도 아이리를 만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아이리를 조금이라도 오래 보기 위해, 늦은 밤이 찾아오기 전. 모든 일을 끝내고 빨리 잠에 드는 것은 이미 히카리의 일상이 되어있었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히카리는 머리의 물기를 털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슬슬 잠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히카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휴대전화를 켰다. 휴대전화를 켠 히카리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나 같은 내용으로 미오에게 메신저가 도착해있었다.

 

 [연락이 너무 안 되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걱정되네.]

 [난 별일 없으니까 괜찮아. 졸리니까 먼저 잘게.]

 

 히카리는 미오의 메신저에 짧은 답변을 보내놓고는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렸다. 옆에서 메신저의 새 답변을 알리는 듯 휴대폰이 울려댔지만, 신경 쓰지 않고 잠에 빠지려 눈을 꽉 감았다.

 그런 히카리의 바램을 하늘이 듣기라도 한 것처럼 히카리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전처럼 몸이 가볍게 떠오를 때쯤, 눈을 천천히 깜빡이자 어제와 같은 공원에 서 있었다. 오늘도 아이리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히카리! 오늘도 평소보다 일찍 왔네. 피곤했어? 아니면 어디 아파?”

 “피곤하지는 않았어. …그냥.”

 “그냥?”

 “됐다. 아무것도 아니야.”

 

 보고싶어서 일찍 찾아왔다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뱉을 수 없었다. 히카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지난번처럼 아이리의 손을 붙잡았다. 여전히 온기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지만, 부드러운 손이었다.

 

 “오늘은 좀 걸어도 괜찮지?”

 “뭐, 공원에 딱히 볼 건 없겠지만…. 난 히카리가 좋으면 다 좋으니까!”

 

 그런건 상관없어, 너랑 있으니까 괜찮아. 히카리가 아이리의 말에 짧게 대답하고는 공원 안쪽을 거닐었다. 꽃과 나무가 심어진 화단과 빈 벤치, 작은 모래사장. 찾아오는 사람이 히카리와 아이리. 둘 뿐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공원과 다를 바는 없었다.

 

 “이전에도 여행할 때, 가끔 공원 가서 쉬었잖아. 되게 재밌었는데.”

 “여행하는 동안에는 그랬었지. 이상한 사건에도 휩쓸렸잖아.”

 “맞아, 히카리가 탐정놀이 했던 거! 아직도 기억나.”

 

 진지했거든? 아이리의 말에 히카리는 내던지듯 대답했다. 손을 맞잡고 한적한 공원을 거닐며, 열차를 타고 여행을 다닐 때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히카리랑 오랜만에 여행 다닐 때 이야기하니까 재밌다!”

 “나도. …그럼 오늘도 나가지는 못하겠지만. 같이 가자.”

 “아, 잠시만. 그, 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흠, 히카리. 저기, 있잖아….”

 

 히카리의 말에 아이리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묘하게 망설이는 눈치였다. 뭔데? 히카리의 말에 아이리가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그러니까. 히카리가 더는 나한테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로야. 굳이 나를 보러 오지 않아도 돼. …내가 모를 리가 없잖아. 내가 있는 꿈이 악몽이라는 거랑 히카리가 일부러 여기 들어온다는 거.”

 

 아이리의 말에 히카리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억지로 잠에 들고, 이 꿈속에 찾아오던 것은 사실이었다.

 

 “너를 볼 방법이 이것밖에 없잖아. 내 이미지네이션도, 네가 돌아온다는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기다리기만 해?”

 “전부 히카리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히카리는 아직 현실에 가족이 남아있잖아. 친구들도 남아있고!”

 “그래서 너를 만나러 오면 안 되는 거야?”

 “응. 계속 악몽에 있는 나를 만나러 오는 건, 나도 기쁘지가 않아. 히카리가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나한테 묶여있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리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타인의 꿈을 지켰던 자신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 자기를 보기 위해 악몽으로 걸어들어오는 것을 말리지 못했다. 애써 미소를 지으며, 아이리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히카리의 손을 풀어주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이제 안 찾아오면 좋겠어. 내 마지막 부탁이야.”

 “너를 만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데? 5년도 넘게 기다렸어. 그러다가 겨우 만난 건데, 여기서 돌아가라고? 또 언제 만날 수 있을지, 현실에서 죽었는지도 살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히카리.”

 “네가 있는 ‘악몽’에 내가 찾아오는 게 불만이면, 여기서 깨지 않으면, 너랑 계속 같이 있으면 문제없잖아.”

 

 히카리는 평소와 똑같은 크기지만, 떨림이 서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이전처럼 같이 여행해달라는 부탁도 아니잖아. 그냥 찾아오는 거나 같이 있어달라는 부탁도 들어주기 싫은 거면. 너는,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니야?”

 “히카리.”

 “그럼 나도 너처럼 여기에 있을게. 돌아가지 않으면, 찾아오지 않아도 되는 거니까 괜찮잖아. 여기에 있을게, 나도.”

 

 히카리는 공원 출구에서 흘러들어오는 빛을 등지고 아이리를 바라보고는, 아이리의 두 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등 뒤에서 흐물거리던 빛이 히카리의 발치에서 부서지고는 사방으로 흩어졌다.

 꿈에서 깨지 않아도 상관없어, 너랑 같이 있으면 괜찮아. 너랑 같이 있으면, 악몽도 좋은 꿈일 거야. 히카리는 작게 중얼거리며, 아이리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아이리는 히카리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공원에 남아있는 것은 회색빛 안개와 둘의 인영뿐이었다.

Editten By ITE(@Uruwashii_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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