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임리스 드림
*캐해석 설정 날조 주의
*급전개 급마무리주의
“괜찮은 거야?”
“어? 어.”
“거짓말이 너무 자연스레 나오네. 너 엄청 피곤해 보여.”
“너 때문이잖아.”
눈앞에 쌓여있는 서류를 보며 염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곧 책상을 부술 것 같아 그는 화내지 말라며 웃었다. 안 그래도 요즘 악몽을 꾸고 있어 피곤한데 또 다른 피곤함의 원인이 피곤을 생성해내니 염호는 머리까지 아파졌다. 일처리를 하는 것까진 좋지만 뒷마무리는 자신이 해야 했기에 웃으면서 저를 보는 그에게 다친 곳을 치료나 하라고 말한 뒤 숨을 길게 내쉰다.
“그럼 나 퇴근할까?”
“맘대로… 아니, 하지 마. 치료만 하고 와.”
“아깝다.”
아쉬운 표정으로 밖으로 나간다. 문이 닫히고 걸어가는 소리가 멀어지자 염호는 책상 위로 엎드렸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약을 겨우 집어 뜯어내 먹었다. 다른 사람 몰래 병원을 가는 것도 지친다. 눈을 감으면 편안해져야 할 텐데 너무나 괴롭다. 그렇다고 밤을 새우는 건 일상생활에 무리다.
점점 감기는 눈에 결국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하늘에선 눈이 내리고 있다. 바로 고개를 돌리면 죽은 꽃이 저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올 때면 죽은 꽃이 서로 부딪쳐 스산한 소리를 낸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한 사람. 몸을 일으켰다. 소리는 살짝 멀어지고 죽은 꽃들이 가득했다. 날카로운 바람을 따라 울려 퍼지는 죽은 꽃들의 춤추는 소리. 그리고 누군가를 떠올렸다. 어째서인 진 알 수 없지만 머리가 말하고 몸이 바로 행동했다. 그를 찾아야 한다고.
불길한 예감. 그의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무서워서 두려움에 떨고 있진 않을까. 웃으면서도 제 사람들을 챙기는 그가 저에겐 힘들다고 말하며 울거나 웃는 그가.
눈앞에 있는 어둠이 해쳐 앞으로 걸어간다. 그럴수록 점점 더 어둠이 더 앞을 막아왔다. 어둠의 틈 사이로 밝은 빛이 들어오면서 그가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고 턱에 고인 눈물방울이 떨어져 나가자 붉은 핏방울로 바뀌어 춤을 주는 죽은 꽃 위로 떨어져 붉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가 쓰러진 달려가 품에 안았다. 울부짖었다. 쓰러져 점점 바스러지는 몸을 붙잡고 뺨을 맞대며 평소엔 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었다.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괜찮은 거야?”
“어? 어.”
“거짓말이 너무 자연스레 나오네. 너 엄청 피곤해 보여.”
“너 때문…….”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진입 전에 잠을 자다니…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어디서부터 꿈이었을까. 염호는 마른 세수를 한다. 똑같은 대화를 한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주변에 있던 저를 향한 시선에 지금이 현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도착한 건물을 바라보면서 염호는 현장에 투입되는 그에게 다가갔다. 파란 나뭇잎 가면이 웃고 있다 의심하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본다.
“그냥 안 가면 안 되냐?”
“난 좋은 걸.”
“아, 그래. 그러시겠지.”
“시비 걸려고 온 거야?”
“그럴 리가. 상대가 걱정이 돼서 그렇지이.”
말은 그렇게 하면서 마지막 말이 살짝 떨려왔다. 그가 웃자 조금 전에 봤던 모습이 떠올려 저도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때릴 거야? 하면서 놀리는 투로 장난치는 그에게 염호는 빨리 들어가라며 짜증을 냈다.
경찰이 현장으로 투입된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보통이면 연락이 오고도 남을 시간. 악몽이 떠올라 고개를 가로저으며 최대한 떨쳐내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총성이 너무나 날카로워 어깨가 떨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무전이 들어오자 빠르게 손으로 무전기를 들었다.
[미안. 무전기를 놓쳐서-]
말이 끊기면서 둔탁한 소리가 들리고 무전은 끊겼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알 수 없는 감정이 휩싸였다. 어디선가 붉은 꽃잎이 날아오고 시야가 가려져 어둠이 살짝 눈앞에 나타났다.
머리가 시키는 대로 저도 모르게 몸을 움직였다.
악몽에서도 찾아 헤맸다. 배경은 달라도 불길한 예감은 지금과 마찬가지다. 본인이 나선다고 할 때 말렸어야 했다. 누구처럼 금강불괴도 아니면서 몸으로 싸우는 건 무리였고 혼자 생각에 잠겨 그의 말에 대답을 했던 게 잘못이었다. 넓은 건물 안에서 울리는 제 발소리만이 되돌아왔다.
목소리라도 내준다면 위치를 알 수 있을 텐데. 염호는 악몽과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와는 다르게 저를 막는 것은 없고 몸이 점점 무거워져간다.
높은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소리가 구른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걷고 계단을 밟고 올랐다.
눈앞에 보이는 건 두 사람. 한 사람은 벽에 처박힌 체 바닥에 한두 방울 붉은 꽃을 피워냈다. 다른 한 명인 남자에겐 관심도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떨쳐내고 당장 달려가 남자를 공격하려는 순간 남자의 얼굴로 손 하나가 올라갔다. 이어지는 비명에 염호는 멈춰 섰다.
“염호야 왜 왔어?”
“너… 피…….”
“아, 이거? 별거 아닌데. 맨날 나잖아.”
남자를 놓아주자 제 얼굴을 잡고 아파한다. 그런 그에게 근처에 떨어뜨린 수갑을 집어 들어 채운다. 얼굴이 파래진 염호에게 그는 제 가면과 색이 같다며 웃으면서 다가온다. 손으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자 피와 함께 묻어 나오니 혀를 차면서 옷에 닦아낸다.
눈앞이 살짝 어지러운지 눈을 비비던 그가 몸을 휘청이자 염호가 이번엔 다가간다. 괜찮냐며 묻는데 그가 말은 괜찮다면서 몸이 크게 휘청였다. 넘어지는 걸 막으려 염호가 그를 붙잡았다.
이래저래 악몽과 겹쳐지는 상황에 염호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를 흔들며 이름을 불렀다. 입술을 깨물고 일어나라며 흔들었다. 죽으면 안 된다. 눈물방울이 그의 뺨 위로 떨어진다. 점점 눈이 떨리더니 겨우 그가 눈을 떴다. 염호가 그를 흔들며 다시 이름을 부른다.
곧이어 바뀌는 표정을 보고는 기쁨과 약간의 짜증이 밀려왔다.
“나 안 죽었으니까 그만 흔들어, 머리 아파.”
그 한마디와 함께 기절한 그를 안아들고 염호는 당장 병원으로 향했다. 건물 밖으로 나와 구급차를 탈 때까지 주변에 있던 경찰에게 안쓰러운 시선을 받으며 염호는 남몰래 눈물을 닦아냈다.
눈을 뜨자 바로 보이는 염호의 얼굴에 그가 웃었다.
“누가 보면 내가 죽은 줄 알겠다.”
“너 진짜로 죽을뻔했으니까.”
“염호 네 덕분에 살았지.”
“다신 이런 짓 하지 마.”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걸 보고 그는 손을 잡았다. 놀란 염호가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살짝 당기자 염혼 빙 의자에 앉았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같은 말을 한 번 더 반복해서 하자 그는 사과를 한 뒤 미소를 지었다. 이런 마음을 네가 알까. 염호는 속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감정을 겨우 추슬렀다.
그 지옥 같은 악몽 속에서 했던 말이 내 진심인 것을.
목 끝까지 차오른 말 대신 숨을 내쉬며 잡힌 손을 떼어내 침대 위로 올렸다. 그리고는 제 손을 들어 얼굴 쪽으로 가져가 뺨을 쭉 당겼다. 아프다고 난리 치자 그제야 놓고선 툭툭 건드린다. 제 뺨을 만지면서 투덜거리는 그를 보고 다시 한번 숨을 내쉰다.
“염호야 나 퇴원하면 안 돼?”
“너 팔 부러졌거든.”
“다리가 부러진 게 아니잖아.”
“이번엔 절대로 안 돼.”
“에잉.”
에잉은 무슨. 염호는 다친 팔을 꾹 누르자 그가 조금 전보다 더 큰 비명을 지른다. 아파 손바닥으로 팔을 문지른다. 원망의 눈빛을 쏘아대며 아파하는 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문밖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익숙한 발걸음에 염호는 몸을 일으켰다. 곧 문을 열고 예상한 사람이 들어오자 염호는 시선을 돌리고 침대에 누워있던 그가 상체를 급하게 일으켰다. 또다. 아프지 않은 척. 조금 전까지 아프다고 난리 쳤으면서.
네가 좋아. 어째서인지 악몽에서 듣던 말이 떠올랐다. 그건 악몽이다. 알면서도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다나가 그에게 괜찮냐며 느릿하게 걸어가 빈 의자에 앉았다. 둘이 대화를 하자 염호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준다.
문밖으로 나와 근처 의자에 앉았다. 들려오는 말이 저를 향하는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들리지 않는 척 고개를 돌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지켜본다. 초점이 점점 흐려지자 피곤한가 싶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엔 좋은 꿈을 꿀 수 있을까. 끝나지 않을 악몽이란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들려오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