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에 위화감이 느껴졌다. 임주는 눈을 떴다. 익숙하되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 임주를 맞이했다. 급하게 상체를 일으키자 두통이 밀려왔다. 찡그린 채로 간신히 주위를 둘러봤다. 새벽의 어스름이 흰 벽지를 잿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갖가지 물건이 널브러진 방 안은, 그럼에도 색채가 적어 으스스했다. 해가 뜨기 전의 공기가 찬 탓도 있으리라. 깜박 잠이 들어 중간에 깨고 만 자신의 몸이 원망스러웠다. 출근을 준비할 시간이 아니라는 건 명백했다. 오늘이 주중이던가. 손을 뻗어 휴대폰을 잡았다. 케이스를 씌운 기계의 감촉이 묘하게 생소했다. 무심코 놓쳐 떨어트린 휴대폰이 타닥,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조차 이상했다. 지나칠 정도로 모든 것이 임주를 밀어냈다. 중요한 무언가를 잊은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기억해내려 할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제 과음이라도 했나? 전날 술은 마시지 않았다. 아니면 정신 보패에 당했나?
“……윽.”
또다. 또 두통이었다. 보패가 뭐지? 어디선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이 멈췄다. 긴장된 숨을 소리 없이 내뱉었다. 혼자 사는 이 집이야말로 가장 편안한 곳이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 장소보다도 불안감을 주고 있었다. 시야가 일렁였다. 벽에 손을 짚고 천천히 일어났다. 웃음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환청이기를 바라며, 임주는 부엌으로 향했다. 간신히 컵에 물을 따르고, 약 상자에서 약 한 알을 꺼내 입에 털어넣었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 얌전히 누워 쉬자. 입고 있던 정장은 굳이 갈아입지 않기로 했다. 구김만 펴 줄 생각으로 가슴께에 손을 댔다.
“어.”
무심코 소리가 나갔다. 금색 핀이 재킷에 꽂혀 있었다. 수수한 꽃 장식이 달린 머리핀이었다. 넥타이핀도 아닌 머리핀을 왜? 임주는 핀을 손으로 잡고, 재킷에서 빼냈다.
소중히 할게요.
순간,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어렴풋한 한 마디는 자신의 목소리였다. 선물? 누가? 탁한 금발이 뇌리를 스쳤다.
“비호 씨.”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출근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잠에 들기 전까지는 고대 중국이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왔다고? 물론 자신은 현대의 인간이었다. 어째서 은나라로 날아간 건지 알지 못한 채, 무성왕의 옆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게 어제까지의 일이었다. 집에 돌아갈 방법을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었다.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의 곁을 지키자고 정했다.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지던 마음을 애써 잠재우면서.
“아니야.”
꿈이 분명했다. 비호가 선물한 머리핀은 확실히 존재했다. 그렇다면 이 집이, 집으로 돌아온 게 꿈이었다.
“재밌네. 무서워하는 게 자기 집으로 돌아가버리는 거고, 이젠 꿈에서 깨어나려 한다고?”
웃음소리와 같은 톤의 목소리가 말했다. 주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딴 보패, 난 재미 없어. 옷을 노리러 왔지? 절대 못 주니까 포기해.”
“아하, 네 새까만 옷은 갑옷이랬지. 흥미는 있어. 빼앗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이상한 여자가 무성왕의 옆에 나타났대서, 뭘 두려워할까 궁금했을 뿐이야.”
두려운 거라면 수없이 많았다. 일개 회사원이던 임주가 믿을 거라곤 비호와 이 옷이 전부였다. 현대에서는 평범한 정장임에도, 그곳에서는 들어오는 공격을 전부 튕겨내던 옷이었다. 소문을 듣고 빼앗으러 오는 적은 모두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고대 중국도, 무엇 하나 무섭지 않은 게 없었다.
“그래. 돌아가기 싫어. 그분 옆에 남고 싶어.”
두려우면 뭐가 어떻단 말인가. 자신이 있는, 그리고 있을 곳은 비호의 옆이었다. 임주는 손에 쥐었던 핀을 머리에 꽂았다. 언젠가 비호가 어색하게 꽂아 준, 바로 그 위치였다.
“꿈 같은 거에 안 떨어. 깨면 끝이니까.”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공간에 금이 갔다. 멀리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렸다. 이번에야말로 듣고 싶은 목소리였다. 직후, 임주를 부르던 장본인이 눈앞에 나타났다.
“임주? 이건, 대체.”
“비호 씨!”
“이런, 의식의 틈으로 무성왕을 끌어들여 버렸군. 흠, 재밌는 여자야. 그럼 공간이 붕괴하고 있으니 난 이만.”
비호를 쳐다보는 틈에, 보패의 주인은 그렇게 말했다. 꺼림칙한 목소리가 멀어져갔다.
“기다려!”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대를 잡을 방법은 없었다. 어느새 완전히 기척을 감춘 누군가에, 임주는 소리가 들리던 곳을 노려봤다.
“우리도 나가지. 자세한 건 밖에서 들려줘. 혹시 모르니 꽉 잡고.”
“……네.”
몸이 들어올려지는 감각은 이제 익숙했다. 비호의 팔을 힘주어 잡자, 무성왕의 주먹이 금 간 벽을 강타했다. 붕괴되는 공간 속에서, 비호가 눈부신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돌아왔나.”
“비호 씨…….”
“잘 잤어? 임주.”
눈을 감았다 뜨니, 확실하게 고대 중국이었다. 소중한 사람이 되어버린 이가 곁에서 부드럽게 웃었다.
“그건 뭐였어?”
“공간 보패인 것 같아요. 꿈에 그 사람이 무서워하는 걸 보여주는.”
“거긴, 임주의 원래 집이야?”
대답하면 무성왕은 알아버리고 만다. 그렇다 해도 숨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임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돌아가는 게 무서운 거야?”
“갑자기 눈 떴는데 집인 건 싫어요. 인사는 하고 가야죠.”
무심코 손을 들어올렸다가, 어색하게 내렸다. 이미 마음을 알리고 황가(黃家)의 일원이 되었음에도, 많은 것에 겁이 나는 나이였다.
“나쁜 꿈일 뿐이에요. 깨면 그만이죠.”
“그럼 산책이라도 갈까? 새벽이라 공기가 차서, 짧게나마 한 바퀴 돌아도 기분이 좀 괜찮아질 거야.”
직전에 뭘 하려던 건지 다 안다는 듯, 비호의 커다란 손이 임주의 손에 겹쳐졌다. 항상 그랬다. 불안을 가져오는 이유이면서, 비호는 그 불안마저 날려주는 존재였다.
“고맙습니다.”
“뭘. 나갈까?”
“네.”
꿈 속의, 오한마저 드는 공기와는 다를 터였다. 곁에 비호가 있다. 그것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그의 말대로, 이곳의 새벽 공기는 기분이 좋을 정도로 차겠지. 임주는 손의 방향을 틀어, 커다란 손을 마주 잡았다.